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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상년 이중하 간찰(李重夏 簡札)
기본정보
- ㆍ자료ID
- A003_01_A00213_001
- ㆍ입수처
- 전주이씨 선교장
- ㆍ자료유형
- 고문서
- ㆍ유형분류
- 서간통고류-간찰(簡札)
- ㆍ주제분류
- ㆍ문서명
- 미상년 이중하 간찰 / 李重夏 簡札
- ㆍ발급자
-
이중하(李重夏, 1846~1917)
원문내용:추정:
- ㆍ수취자
-
원문내용:추정:
- ㆍ발급시기
-
간지연도:왕력:추정시기:본문:
- ㆍ형태정보
-
점수: 1크기: 23 × 59접은크기: ×서명:인장종수:보존상태:언어:자료형태:
- ㆍ정의
- 미상년 서신을 받은 당일에 이중하가 안부를 주고받고 근황 등을 알리기 위해 쓴 간찰
- ㆍ기타사항
- ㆍ현소장처
- 율곡연구원
- ㆍ지정문화재
- 이름: 분류: 지정년도:
- ㆍ수장고
- 이름: 서가위치: 단위치:
해제
미상년 즉일에 종하생(宗下生) 이중하(李重夏, 1846~1917)가 안부를 주고받고 근황 등을 알리고자 발급한 간찰이다. 발급자는 상대에 대해 자신을 ‘宗下生’이라고만 표기하여 수신자와는 같은 문중(전주이씨) 출신으로 연배가 다소 낮은 인물로 파악된다. 별도의 피봉은 전해지지 않는다. 본문에서 언급된 환정은 환곡 정사를 의미하는 것으로 지방 수령의 업무 가운데 하나였다. 또한 상대의 ‘환미(宦味, 벼슬살이의 재미)’를 언급하였으므로 당시 수신자는 지방 수령에 재직 중이었음을 알 수 있다. 발급자 이중하는 자는 후경(厚卿), 호는 이당(二堂)‧탄재(坦齋)‧규당(圭堂), 본관은 전주(全州), 부친은 이인식(李寅植)이다. 1873년(고종10) 계유 식년시 진사 3등 225위로 입격하고, 1882년(고종19) 임오 대증광시 병과 10위로 급제하였다. 이후 공조참의‧안변부사‧경북관찰사‧궁내부특진관‧규장각제학 등을 역임하였다. 특히 1885년과 1886년에 토문감계사로서 청국과 백두산정계비와 토문강지계를 심사하였고, 1909년 친일단체 일진회(一進會)가 일제와의 합방론을 주장하자 그 부당함을 지적하였으며, 1910년 한일합방에 극렬히 반대했던 인물이다.
어제 상대가 찾아와 정답게 이야기 나눈 일은 그간 격조하여 그립던 뒤끝에 위로되는 일이었다고 하면서, 그 뒤로 상대의 체도가 좋다는 점을 알게 되어 바라던 마음에 흡족하다고 했다. 자신은 여전히 병들어 지낸다고 하면서, 아침에 이미 사직상소를 올렸으니 체직되는 은전을 기다릴 뿐이라고 했다. 상대가 보내준 4종의 선물은 이것을 어떻게 가지고 온 것이었냐고 하면서, 상대가 벼슬살이가 기쁘지 않은 점은 아니나 집안 사람들과 큰 덕을 받을 수 있겠는가라고 했다. 이는 물건을 구하기 매우 어렵기 때문만이 아니요, 만남조차 극히 어려운 때문이라고 하고는, 더구나 대관령으로 막힌 먼 곳에서 온 것에야 어떻겠는가라 하고, 감사한 마음이 지극하다고 했다. 풍진 세상에서 이별한 회포는 같이 암담할 것이라고 한 후, 부디 환정(還政)이 태평하고 백성을 잘 다스리길 바란다고 하였다.
- · 『승정원일기』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참고자료
원문
昨枉穩敍 阻鬱熲仰之餘 果慰感于心 伏拜審夜謝 令體萬旺 允愜心禱 宗下 病苦如昨 朝已陳章 惟俟恩諒耳 頫惠四種 此是携來者耶 宗氏之宦味 何可不欣 然而受與家人飽德耶 此政非物之艱逢之極艱 況大嶺之阻遠耶 感結不可緩也 風塵中別懷 同是黯然 惟祝還政太平 多活峽氓 不備謝禮 卽 宗下生 重夏 拜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