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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5년 이유승 간찰(李裕承 簡札)
기본정보
- ㆍ자료ID
- A003_01_A00187_001
- ㆍ입수처
- 전주이씨 선교장
- ㆍ자료유형
- 고문서
- ㆍ유형분류
- 서간통고류-간찰(簡札)
- ㆍ주제분류
- ㆍ문서명
- 1895년 이유승 간찰 / 李裕承 簡札
- ㆍ발급자
-
이유승(李裕承, 1835~)
원문내용:추정:
- ㆍ수취자
-
원문내용:추정:
- ㆍ발급시기
-
1895년 5월 9일간지연도:왕력:추정시기:본문: 乙未 閏月 初九
- ㆍ형태정보
-
점수: 1크기: 49.5 × 57.5접은크기: ×서명:인장종수:보존상태:언어:자료형태:
- ㆍ정의
- 을미년(1895) 윤5월 9일에 기하(記下) 이유승(李裕承, 1835~?)이 안부를 주고받고 근황 등을 알리고자 발급한 간찰
- ㆍ기타사항
- ㆍ현소장처
- 율곡연구원
- ㆍ지정문화재
- 이름: 분류: 지정년도:
해제
을미년(1895) 윤5월 9일에 기하(記下) 이유승(李裕承, 1835~?)이 안부를 주고받고 근황 등을 알리고자 발급한 간찰이다. 발급자는 상대에 대해 자신을 ‘記下’라고 표현하여 평교간이면서 어느 정도 안면이 있던 사이로 추정된다. 피봉은 별도의 단봉이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수신자 정보로 “江陵 政閣 令執”이 기록되어 있다. 이 문건이 전주이씨(全州李氏) 선교장(船橋莊) 문서임을 감안하면 수신자는 당시 강릉부와 관련된 직임을 맡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승정원일기』에 따르면 이 간찰이 발급된 해에 이위(李暐, 1839~1914)가 강릉부 관찰사(江陵府觀察使)에 재직 중이었음이 확인된다. 하지만 그는 본관이 ‘덕수(德水)’이므로 이 간찰의 수신인은 강릉부 내의 별도의 직임 또는 강릉 향청의 좌수와 같은 직임을 맡았을 가능성이 있지만, 이 간찰의 정보만으로는 미상이다. 별도의 피봉은 없고 배접되어 가운데가 접힌 형태로 존재하는 것으로 보면 간첩(簡帖)으로 후 가공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조금 격조하여 그립던 차에 상대의 편지를 받고 요즘 더위에 정무 보는 상대의 체후가 좋다는 점을 알게 되어 위로되며, 행차가 곧 돌아올 것인데 장부를 마감하는 일로 고생하지는 않았는지 물었다. 자신은 화수증이 가시지 않아 목소리가 나지 않으니 고질병이 된 듯하다고 하면서, 가솔들이 편안한 것만 다행이라고 했다.
발급자 이유승은 자는 경선(景先), 본관은 경주(慶州), 부친은 이계선(李啓善)이다. 백사(白沙) 이항복(李恒福)의 9대손이며, 독립운동가 성재(省齋) 이시영(李始榮)의 부친이다. 1864년(고종1) 증광시 병과로 문과에 급제한 뒤 한성판윤‧이조판서‧우찬성‧중추원일등의관‧궁내부특진관‧태의원경 등을 역임하였다. 1905년 을사늑약 때 반대 상소를 올렸다. 시호는 효정(孝貞)이다.
- · 『승정원일기』,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참고자료
원문
稍阻耿誦際切 卽承審比熱 令體視篆佳護 仰慰叶頌 行將賦歸矣 得無以勘簿爲惱乎 記下 火嗽尙爾 聲閉不開 似爲痼祟 極悶極悶 惟幸諸率之一安耳 餘留此 不備謝禮 乙未 閏月 初九 記下 裕承 拜
江陵 政閣 令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