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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23년 김정 예의 '국유황화' 시권(金炡 禮義 '鞠有黃華' 試券)
기본정보
- ㆍ자료ID
- B003_01_A00040_001
- ㆍ입수처
- 김회준
- ㆍ자료유형
- 고문서
- ㆍ유형분류
- 증빙류-시권(試券)
- ㆍ주제분류
- ㆍ문서명
- 1723년 김정 예의 '국유황화' 시권 / 金炡 禮義 '鞠有黃華' 試券
- ㆍ발급자
-
김정(金炡, 1678~1733)
원문내용:추정:
- ㆍ수취자
-
원문내용:추정:
- ㆍ발급시기
-
1723년간지연도:왕력:추정시기:본문:
- ㆍ형태정보
-
점수: 1크기: 71.5 × 205.8접은크기: ×서명:인장종수:보존상태: 양호언어:자료형태:
- ㆍ정의
- ㆍ기타사항
- ㆍ현소장처
- 율곡연구원
- ㆍ지정문화재
- 이름: 분류: 지정년도:
- ㆍ수장고
- 이름: 서가위치: 단위치:
해제
이 시권(試券; 과거시험의 답안지)의 작성자는 강릉에 사는 46세의 경주김씨(慶州金氏) 김정(金炡; 1678∼1733)이고, 작성시기는 1723년(경종 3)이다. 김정이 본 과거시험은 1723년(경종 3) 생원시 복시이다. 이는 후술하는 황첨(黃籤; 노란색 첨지)를 통해서 쉽게 확인된다. 고시과목은 ‘경의(經義)’이다. 여기서의 ‘경(經)’이란 일반적으로 오경(五經; 주역‧서경‧시경‧예기‧춘추)을 지칭하나, 경우에 따라서는 춘추 또는 춘추‧예기를 제외한 사경(四經) 또는 삼경(三經)을 지칭할 경우도 있다. ‘오경의(五經義)’는 오경에 기술된 내용 중 이해하기 어렵거나 의심스러운 단구(短句)에 대해 경문의 의미[經義]를 밝힐 것을 요구하고 그에 응하여 해설을 제시하는 형식의 제술(製述; 글짓기) 시험의 한 과목이다. 출제하는 경전의 종류에 따라 역의(易義)·서의(書義)·시의(詩義)·예의(禮義)·춘추의(春秋義)라 이른다. 김정의 생원시에서는 예기의 한 대목을 해설하는 예의(禮義)를 시험하였다.
김정의 예의(禮義) 시권의 시제(試題)는 “국유황화(鞠有黃華)”인데, 이는 “국화에 노란 꽃이 핀다”는 뜻의 말이다. 이 시제(試題)의 출처는 『예기』 「월령(月令)」이다. 거기에 “(9월에) 기러기가 빈(賓)으로 오고, 참새가 큰물에 들어가서 조개가 되고, 국화가 노란 꽃을 피운다.[鴻鴈來賓, 爵入大水爲蛤, 鞠有黃華.]”라는 말이 보인다. 경의의 제문(製文; 작문)은 경전 본문의 의미를 마치 주석가가 설경(說經)하듯이 주해자의 입장에서 명확하고 조리 있게 해설해야 하되, 논리적인 전개를 위해 서론‧본론‧결론에 해당하는 허두(虛頭)‧중두(中頭)‧편종(篇終) 등의 투식에 따라서 작문하여야 한다. 제문의 전체 분량은 대략 30항(行) 정도를 채우면 되는데, 이 김정의 시권의 경우 31항이다. 경의의 기두(起頭)에는 대개 18세기 이후로 ‘오호(嗚呼)’ 또는 ‘우(吁)’라는 감탄사로써 시작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경의의 대미(大尾)에서는 언제나 ‘근의(謹義)’〔‘삼가 뜻풀이 합니다’ 또는 ‘삼가 經義를 지었습니다’〕라는 투식어로써 끝을 맺는데, 김정도 이러한 투식을 잘 따랐다.
과차(科次; 성적의 등급)는 ‘차상(次上)’이고, 등제(等第; 합격 석차)는 ‘이지륙(二之六)’ 곧 ‘두 번째 등급의 제6위’이다. 과차는 상상·상중·상하, 중상·중중·중하, 하상·하중·하하로 나누어 합격권으로 치고, 그 아래로 또 차상·차중·차하·갱·외 등으로 나누어 불합격으로 처리함이 원칙이었다. 그러나 합격 인원수를 다 채우지 못할 경우에는 차상 이하의 과차에서도 선발하였으므로, 김정은 차상의 성적으로 합격권에 들게 되었던 것이다. 생원시에서의 이 등제 ‘이지륙(二之六)’은 전체 합격자 100인 중 제11위에 해당한다. ‘八巨(팔거)’라는 글자는 시권을 제출한 순서에 때라 천자문의 매 글자를 순차적으로 열 번씩 사용하여 매긴 자호(字號; 시권 관리번호)이다. 시제를 기록한 왼쪽에 “생원이등제6인(生員二等第六人)”이라는 노란색 첨지(籤紙)가 첨부되어 있는데, 이는 시관들이 고권(考券; 채점)을 마치고 나서 국왕에게 그 결과를 보고하고 국왕의 재가를 받을 때 붙인 등제(等第)의 표시이다. 이 첨지를 통해서 생원시의 최종 단계인 생원시 복시에 합격하여 생원이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시권에는 비봉(秘封)과 첨지가 온전하게 보존되어 잘 붙어 있다. 김정의 사마방목(司馬榜目)에 기록된 내용도 또한 비봉상의 부(父)의 성명 및 첨지상의 등제 기재와 모두 일치한다.
원문
원문이 존재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