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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적 삶의 실현을 위한 모임 : 향약계 --「남이리면 향약계 성첩南二里面鄕約契成帖」-
김철운(율곡연구원) 건전하고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힘은 무엇인가? 물론 사람들에 따라서 다양한 의견이 있을 수 있겠지만 그것은 기본적으로 타인의 주장, 감정, 생각 등에 대하여 자신도 그렇다고 느끼는 공감(共感) 능력에 기반한 공동체적 삶의 실현에 있지 않나 한다. 여기서 공동체가 사전적 정의상 ‘공통의 가치와 정체성을 가지고 특정 사회문화적 공간을 공유하는 사람들의 모임’으로 이해된다고 한다면 이러한 공동체 안에서 사회 구성원들이 서로 약속한 규범과 전통적인 도덕적 관습을 지켜 나가는 것은 그 무엇보다도 중요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을 통해 건전한 사회질서의 유지 및 건강한 인간관계의 형성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그러한 이유로 최근에 과거 사람들이 무엇을 통해서 그러한 공동체적 사회를 실현·유지하려고 하였으며, 어떻게 그러한 공동체적 삶을 형성해 나가려 했는가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래서 율곡연구원 수장고에서 과거 사람들의 공동체적 삶과 관련된 강릉의 옛 문서들...
순포산에 선조를 모시기까지 : 청풍당의 산송 이야기
이종록(율곡국학진흥원)
1. 밤중에 갑자기 생긴 무덤 1892년(고종 29), 청풍당의 가주 권영진(權永鎭, 1859~1934, 개명 전 權遠植)은 증조부 권기영(權基榮, 1782~1812)의 묘를 하남면(河南面) 순포리(蓴浦里) 즉, 현재 사천면(沙川面) 산대월리(山帶月里)로 이장하려 했다. 청풍당은 이미 묏자리를 정하고 길일도 잡아 두었다. 발괄[白活]에는 이장 날짜가 “이달 보름 무렵”으로 적혀 있고, 간찰에는 “지난해 10월 10일”로도 기록되어 있다. 자료마다 날짜 표현은 조금 다르지만, 청풍당이 1892년 10월 중순 무렵 권기영의 묘를 이장하려 했던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이장을 준비하던 중 뜻밖의 소식이 전해졌다. 9월 7일, 산 아래 집터에 살던 김씨 양반이 찾아와 “9월 4일 밤에 어떤 자가 청풍당에서 정해 둔 자리에 몰래 묘를 썼다”고 알려온 것이다. 급히 가서 살펴보니, 과연 그곳에는 조성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작은 봉분이 있었다. 흙빛이 아직 ...
방풍림이라고 불렸을까?
정우진(율곡연구원) 2025년 5월 20일 5시에 눈을 떴다. 아직 어두운 기운이 걷히지 않았다. 경포호를 따라 강문해변까지 걷고 싶었다. 바닷가의 소나무 사이로 갓 떠오른 태양을 보고 싶었고, 솔바람 소리도 듣고 싶었다. 오죽헌 앞 삼거리에서 신호등을 기다리다 발걸음을 돌렸다. 과하게 넓은 도로는 너무 시끄러웠으므로 그곳을 당장 피하고 싶었다. 그러나 저녁에는 갈 것이다. 오죽헌 삼거리의 소란스러움이 잠잠해질 때, 그곳을 넘어 메타세콰이어가 나란히 심겨진 습지로 갈 것이다. 습지를 지나 경포호를 따라 걸을 것이다. 강문해변에 도착하면 내가 좋아하는 자리에 앉아 호흡을 고르고, 오랫동안 바닷바람을 견뎌왔을 소나무를 느낄 것이다. 이 소나무들은 방풍림이라고 불린다. 본래부터 방풍림이라고 불렸을까? 1892년 5월, 현재는 동해시가 된 도하면, 견박면, 도상면의 북삼면에 사는 김병익 등 9명이 삼척부사에게 청원을 담은 첩정(牒呈)을 올렸다.
북삼면 백성 들이 아뢰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