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학 아카이브"는 강원권자료를 중심으로 한국학 일반에 관한 고자료와 근현대자료의
이미지와 해제를 제공하는 아카이브입니다.
연적과 그녀의 아들인 강아지를 추포해서 돌려보내 주시오
정우진(율곡국학진흥원) 송나라에서 들여온 종법제도는 단순히 역사적 제도라기 보다는 이념이자 종교이며 철학이다. 조선 성리학자들의 태도가 그랬다. 종법제도가 이식됨에 따라 정주의식이 강화되고 장자상속에 토대한 가문이 중시되었으며 가문의 번영이 개인의 영광을 압도했다. 가문의 유지를 위해서는 상당한 토지가 필요했고 경작을 위한 노동력이 요구되었다. 조선의 사대부들은 노비제를 통해 필요한 노동력을 확보했다. 사람이 합법적으로 사람을 소유하는 노비제도는 고려 때도 있었으나, 조선의 노비제는 보다 광범위하고 철저했다. 노비의 소유는 가문의 번영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었고, 노비수는 당연히 가문의 번영을 상징했다. 그러나 이전의 역사와 철학을 통해 궁극적 자유를 체험한 바 있던 이들은 도망쳤고, 소유자들은 잃어버린 노비를 좇았다.
1763년 강릉대도호부에서 함경도 정평부定平府에 협조를 요청하는 문서를 보냈다. 문서의 좌측 하단에 대자로 관關이라는 글자가 쓰여있다. 관문關文의 표...
산송(山訟)에 문중의 사활을 걸다 -조윤목과 김정유의 묘지 소송-
김철운(율곡연구원)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면서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사람 간에 다양한 형태로 일어나는 분쟁은 거의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이 분쟁은 때론 개인 차원에서 서로 간의 나쁜 감정을 풀어버리는 ‘화해’로 일단락되기도 하고, 물리적인 수단이나 힘을 통한 돌이킬 수 없는 ‘폭력’ 사태로 비화 되기도 하며, 법률상의 판결을 법원에 요구하는 송사로 해결되기도 한다. 이 중에서 분쟁의 해결은 첫 번째가 가장 좋은 방법일 것이고, 두 번째는 반드시 지양되어야 할 방법일 것이다. 문제는 분쟁의 내용이 개인들의 명운을 가를 권리 획득과 직결된 것이라 한다면 세 번째의 송사만큼 분쟁을 해결할 좋은 방법도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송사가 사람들의 실생활에 미치는 막대한 영향을 고려할 때, 되도록이면 송사를 하지 않는 것이 가장 좋을지도 모른다. 먼 옛날이야기지만, 공자의 다음의 말은 시사해 주는 바가 아주 크다고 할 수 있다.
송사를 듣고 판결하는 것은 나도 남들과 다름이 없겠지만,...
방풍림이라고 불렸을까?
정우진(율곡연구원) 2025년 5월 20일 5시에 눈을 떴다. 아직 어두운 기운이 걷히지 않았다. 경포호를 따라 강문해변까지 걷고 싶었다. 바닷가의 소나무 사이로 갓 떠오른 태양을 보고 싶었고, 솔바람 소리도 듣고 싶었다. 오죽헌 앞 삼거리에서 신호등을 기다리다 발걸음을 돌렸다. 과하게 넓은 도로는 너무 시끄러웠으므로 그곳을 당장 피하고 싶었다. 그러나 저녁에는 갈 것이다. 오죽헌 삼거리의 소란스러움이 잠잠해질 때, 그곳을 넘어 메타세콰이어가 나란히 심겨진 습지로 갈 것이다. 습지를 지나 경포호를 따라 걸을 것이다. 강문해변에 도착하면 내가 좋아하는 자리에 앉아 호흡을 고르고, 오랫동안 바닷바람을 견뎌왔을 소나무를 느낄 것이다. 이 소나무들은 방풍림이라고 불린다. 본래부터 방풍림이라고 불렸을까? 1892년 5월, 현재는 동해시가 된 도하면, 견박면, 도상면의 북삼면에 사는 김병익 등 9명이 삼척부사에게 청원을 담은 첩정(牒呈)을 올렸다.
북삼면 백성 들이 아뢰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