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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비 천석 이야기 5 : 다른 이야기
정우진(율곡연구원) 노비가 아닌 상절을 매입하기 위해, 이중 계약서를 작성한 것일까? 완전히 다른 이야기가 가능하지 않을까? 즉, 천석이 이봉구의 노비가 아닐 가능성이다. 처음부터 길을 잘못 들었을 가능성도 있다. 다시 돌아가 보자. 결국은 자료가 말할 때까지 물어볼 수밖에 없다. 자료가 시작이자 끝이다. 천석이 노비를 소유한 노비였다고 생각한 근거는 버젓이 계약서에 '나(吾)'라고 적었기 때문이다. 관례에 따라 거래를 수노가 대신하는 경우에는 관례대로 '吾'의 자리에 '吾矣上典宅,' '上典宅,' '矣上典宅' 등 상전을 표시하는 말이 와야 한다. A003_01_A01247_001 문서는 1748년 정연안댁 두충이 주인의 위임장에 의거해서 아홉명의 노비를 최생원댁 종 엇산에게 매도하는 매매 계약서다.
1748년 정연안 댁 종 두충 노비 매매 문기
건륭 십삼년 무진년 정월 15일 최생원댁 노 엇산에게 글을 쓴다.
우측에서 글을 쓴 까닭은 상전댁이 외가에서 ...
순포산에 선조를 모시기까지 : 청풍당의 산송 이야기
이종록(율곡국학진흥원)
1. 밤중에 갑자기 생긴 무덤 1892년(고종 29), 청풍당의 가주 권영진(權永鎭, 1859~1934, 개명 전 權遠植)은 증조부 권기영(權基榮, 1782~1812)의 묘를 하남면(河南面) 순포리(蓴浦里) 즉, 현재 사천면(沙川面) 산대월리(山帶月里)로 이장하려 했다. 청풍당은 이미 묏자리를 정하고 길일도 잡아 두었다. 발괄[白活]에는 이장 날짜가 “이달 보름 무렵”으로 적혀 있고, 간찰에는 “지난해 10월 10일”로도 기록되어 있다. 자료마다 날짜 표현은 조금 다르지만, 청풍당이 1892년 10월 중순 무렵 권기영의 묘를 이장하려 했던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이장을 준비하던 중 뜻밖의 소식이 전해졌다. 9월 7일, 산 아래 집터에 살던 김씨 양반이 찾아와 “9월 4일 밤에 어떤 자가 청풍당에서 정해 둔 자리에 몰래 묘를 썼다”고 알려온 것이다. 급히 가서 살펴보니, 과연 그곳에는 조성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작은 봉분이 있었다. 흙빛이 아직 ...
방풍림이라고 불렸을까?
정우진(율곡연구원) 2025년 5월 20일 5시에 눈을 떴다. 아직 어두운 기운이 걷히지 않았다. 경포호를 따라 강문해변까지 걷고 싶었다. 바닷가의 소나무 사이로 갓 떠오른 태양을 보고 싶었고, 솔바람 소리도 듣고 싶었다. 오죽헌 앞 삼거리에서 신호등을 기다리다 발걸음을 돌렸다. 과하게 넓은 도로는 너무 시끄러웠으므로 그곳을 당장 피하고 싶었다. 그러나 저녁에는 갈 것이다. 오죽헌 삼거리의 소란스러움이 잠잠해질 때, 그곳을 넘어 메타세콰이어가 나란히 심겨진 습지로 갈 것이다. 습지를 지나 경포호를 따라 걸을 것이다. 강문해변에 도착하면 내가 좋아하는 자리에 앉아 호흡을 고르고, 오랫동안 바닷바람을 견뎌왔을 소나무를 느낄 것이다. 이 소나무들은 방풍림이라고 불린다. 본래부터 방풍림이라고 불렸을까? 1892년 5월, 현재는 동해시가 된 도하면, 견박면, 도상면의 북삼면에 사는 김병익 등 9명이 삼척부사에게 청원을 담은 첩정(牒呈)을 올렸다.
북삼면 백성 들이 아뢰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