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학 아카이브"는 강원권자료를 중심으로 한국학 일반에 관한 고자료와 근현대자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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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김씨태사공파세보 판관공파 5(慶州金氏太師公派世譜 判官公派 5) | 차장섭
여주이씨세보 12 | 차장섭
주역 제9(周易 第九) | 황석홍(평해황씨)
주역 13(周易 13) | 전주이씨 선교장
편지(便紙) | 고불선원
1969년 중방보계 보계리사회 결의록(中芳洑契 洑契理事會 決議錄) | 이상국
수입결의서 | 이상국
동안 동내천국민우급학교 제16회 졸업 기념사진 | 삼척심씨 대종회
노비 천석 이야기 3 : 천석은 59년 전에 죽었다
정우진(율곡연구원) 1934년 호구단자에 천석은 죽었다고 표기되어 있다. 1843년 이봉구가 주호인 호구단자에는 천석이 보이지 않는다. 그를 더 이상 적기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천석은 선교장 이씨 집안의 노비가 아니란 말인가? 1831년 호구단자에 천석이 보인다. 그러나 옆에 고(故)라는 글자가 있다. 노비의 이름과 나이를 기록한 뒤에는 고나 도(逃)를 적는 경우가 있다. 죽었거나 도망갔다는 뜻이다. 천석은 이미 죽은 상태였다. 1843년은 물론이거니와 1833년에도 천석이 체결한 노비계약서는 존재할 수 없다. 노비를 소유하는 것도 물론 불가능하다. 이게 어찌 된 일일까? 계약서 자체가 의심스럽다. 계약을 작성할 때의 차노는 성로(性魯)다. 계약서의 가부를 판단하기 위해 성로부터 확인해보자. 1843년은 계묘년이다. 호구단자는 자, 묘, 오, 유년의 식년에 한 번씩 가계의 호구를 정리한 기록으로, 각 호의 주호(主戶)가 작성해서 관에 제출하는 일종의 호구신고서다. 유사한 ...
순포산에 선조를 모시기까지 : 청풍당의 산송 이야기
이종록(율곡국학진흥원)
1. 밤중에 갑자기 생긴 무덤 1892년(고종 29), 청풍당의 가주 권영진(權永鎭, 1859~1934, 개명 전 權遠植)은 증조부 권기영(權基榮, 1782~1812)의 묘를 하남면(河南面) 순포리(蓴浦里) 즉, 현재 사천면(沙川面) 산대월리(山帶月里)로 이장하려 했다. 청풍당은 이미 묏자리를 정하고 길일도 잡아 두었다. 발괄[白活]에는 이장 날짜가 “이달 보름 무렵”으로 적혀 있고, 간찰에는 “지난해 10월 10일”로도 기록되어 있다. 자료마다 날짜 표현은 조금 다르지만, 청풍당이 1892년 10월 중순 무렵 권기영의 묘를 이장하려 했던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이장을 준비하던 중 뜻밖의 소식이 전해졌다. 9월 7일, 산 아래 집터에 살던 김씨 양반이 찾아와 “9월 4일 밤에 어떤 자가 청풍당에서 정해 둔 자리에 몰래 묘를 썼다”고 알려온 것이다. 급히 가서 살펴보니, 과연 그곳에는 조성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작은 봉분이 있었다. 흙빛이 아직 ...
방풍림이라고 불렸을까?
정우진(율곡연구원) 2025년 5월 20일 5시에 눈을 떴다. 아직 어두운 기운이 걷히지 않았다. 경포호를 따라 강문해변까지 걷고 싶었다. 바닷가의 소나무 사이로 갓 떠오른 태양을 보고 싶었고, 솔바람 소리도 듣고 싶었다. 오죽헌 앞 삼거리에서 신호등을 기다리다 발걸음을 돌렸다. 과하게 넓은 도로는 너무 시끄러웠으므로 그곳을 당장 피하고 싶었다. 그러나 저녁에는 갈 것이다. 오죽헌 삼거리의 소란스러움이 잠잠해질 때, 그곳을 넘어 메타세콰이어가 나란히 심겨진 습지로 갈 것이다. 습지를 지나 경포호를 따라 걸을 것이다. 강문해변에 도착하면 내가 좋아하는 자리에 앉아 호흡을 고르고, 오랫동안 바닷바람을 견뎌왔을 소나무를 느낄 것이다. 이 소나무들은 방풍림이라고 불린다. 본래부터 방풍림이라고 불렸을까? 1892년 5월, 현재는 동해시가 된 도하면, 견박면, 도상면의 북삼면에 사는 김병익 등 9명이 삼척부사에게 청원을 담은 첩정(牒呈)을 올렸다.
북삼면 백성 들이 아뢰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