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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려(旌閭)에 담긴 이야기를 되살린 고문서 ― 「강릉김씨효행록」에서 읽는 삼세사효의 기억
정려(旌閭)에 담긴 이야기를 되살린 고문서 ― 「강릉김씨효행록」에서 읽는 삼세사효의 기억 율곡국학진흥원 이종록 1. 길가에 세워져 있던 정려각 강원특별자치도 강릉시 율곡로 2692, 입암동 한편에는 3대에 걸쳐 배출된 네 명의 효자를 기리는 작은 정려각이 서 있다. 그 안에는 김담(金譚, 1522~1605)과 두 아들 김경황(金景滉, 1549~1623)·김경시(金景時), 손자 김한(金垾, 1578~1663)의 이름을 각각 새긴 네 개의 비석이 나란히 놓여 있다. 이른바 강릉김씨의 ‘삼세사효지려(三世四孝之閭)’이다.
삼세사효지려(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https://www.aks.ac.kr/index.do] 정려는 충신·효자·열녀 등 뛰어난 행실을 국가가 포상하는 정표(旌表) 제도의 하나이다. 대상자가 살던 집이나 마을에 정문(旌門)을 세워 그 행적을 널리 드러냈으며, 세월이 지나 정문과 현판이 낡으면 이를 보호하기 위해 별도의 각을 짓기도 했다. 오늘날 우리가 흔히...
산송(山訟)에 문중의 사활을 걸다 -조윤목과 김정유의 묘지 소송-
김철운(율곡연구원)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면서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사람 간에 다양한 형태로 일어나는 분쟁은 거의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이 분쟁은 때론 개인 차원에서 서로 간의 나쁜 감정을 풀어버리는 ‘화해’로 일단락되기도 하고, 물리적인 수단이나 힘을 통한 돌이킬 수 없는 ‘폭력’ 사태로 비화 되기도 하며, 법률상의 판결을 법원에 요구하는 송사로 해결되기도 한다. 이 중에서 분쟁의 해결은 첫 번째가 가장 좋은 방법일 것이고, 두 번째는 반드시 지양되어야 할 방법일 것이다. 문제는 분쟁의 내용이 개인들의 명운을 가를 권리 획득과 직결된 것이라 한다면 세 번째의 송사만큼 분쟁을 해결할 좋은 방법도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송사가 사람들의 실생활에 미치는 막대한 영향을 고려할 때, 되도록이면 송사를 하지 않는 것이 가장 좋을지도 모른다. 먼 옛날이야기지만, 공자의 다음의 말은 시사해 주는 바가 아주 크다고 할 수 있다.
송사를 듣고 판결하는 것은 나도 남들과 다름이 없겠지만,...
방풍림이라고 불렸을까?
정우진(율곡연구원) 2025년 5월 20일 5시에 눈을 떴다. 아직 어두운 기운이 걷히지 않았다. 경포호를 따라 강문해변까지 걷고 싶었다. 바닷가의 소나무 사이로 갓 떠오른 태양을 보고 싶었고, 솔바람 소리도 듣고 싶었다. 오죽헌 앞 삼거리에서 신호등을 기다리다 발걸음을 돌렸다. 과하게 넓은 도로는 너무 시끄러웠으므로 그곳을 당장 피하고 싶었다. 그러나 저녁에는 갈 것이다. 오죽헌 삼거리의 소란스러움이 잠잠해질 때, 그곳을 넘어 메타세콰이어가 나란히 심겨진 습지로 갈 것이다. 습지를 지나 경포호를 따라 걸을 것이다. 강문해변에 도착하면 내가 좋아하는 자리에 앉아 호흡을 고르고, 오랫동안 바닷바람을 견뎌왔을 소나무를 느낄 것이다. 이 소나무들은 방풍림이라고 불린다. 본래부터 방풍림이라고 불렸을까? 1892년 5월, 현재는 동해시가 된 도하면, 견박면, 도상면의 북삼면에 사는 김병익 등 9명이 삼척부사에게 청원을 담은 첩정(牒呈)을 올렸다.
북삼면 백성 들이 아뢰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