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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적과 그녀의 아들인 강아지를 추포해서 돌려보내 주시오
정우진(율곡국학진흥원) 송나라에서 들여온 종법제도는 단순히 역사적 제도라기 보다는 이념이자 종교이며 철학이다. 조선 성리학자들의 태도가 그랬다. 종법제도가 이식됨에 따라 정주의식이 강화되고 장자상속에 토대한 가문이 중시되었으며 가문의 번영이 개인의 영광을 압도했다. 가문의 유지를 위해서는 상당한 토지가 필요했고 경작을 위한 노동력이 요구되었다. 조선의 사대부들은 노비제를 통해 필요한 노동력을 확보했다. 사람이 합법적으로 사람을 소유하는 노비제도는 고려 때도 있었으나, 조선의 노비제는 보다 광범위하고 철저했다. 노비의 소유는 가문의 번영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었고, 노비수는 당연히 가문의 번영을 상징했다. 그러나 이전의 역사와 철학을 통해 궁극적 자유를 체험한 바 있던 이들은 도망쳤고, 소유자들은 잃어버린 노비를 좇았다.
1763년 강릉대도호부에서 함경도 정평부定平府에 협조를 요청하는 문서를 보냈다. 문서의 좌측 하단에 대자로 관關이라는 글자가 쓰여있다. 관문關文의 표...
순포산에 선조를 모시기까지 : 청풍당의 산송 이야기
이종록(율곡국학진흥원)
1. 밤중에 갑자기 생긴 무덤 1892년(고종 29), 청풍당의 가주 권영진(權永鎭, 1859~1934, 개명 전 權遠植)은 증조부 권기영(權基榮, 1782~1812)의 묘를 하남면(河南面) 순포리(蓴浦里) 즉, 현재 사천면(沙川面) 산대월리(山帶月里)로 이장하려 했다. 청풍당은 이미 묏자리를 정하고 길일도 잡아 두었다. 발괄[白活]에는 이장 날짜가 “이달 보름 무렵”으로 적혀 있고, 간찰에는 “지난해 10월 10일”로도 기록되어 있다. 자료마다 날짜 표현은 조금 다르지만, 청풍당이 1892년 10월 중순 무렵 권기영의 묘를 이장하려 했던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이장을 준비하던 중 뜻밖의 소식이 전해졌다. 9월 7일, 산 아래 집터에 살던 김씨 양반이 찾아와 “9월 4일 밤에 어떤 자가 청풍당에서 정해 둔 자리에 몰래 묘를 썼다”고 알려온 것이다. 급히 가서 살펴보니, 과연 그곳에는 조성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작은 봉분이 있었다. 흙빛이 아직 ...
방풍림이라고 불렸을까?
정우진(율곡연구원) 2025년 5월 20일 5시에 눈을 떴다. 아직 어두운 기운이 걷히지 않았다. 경포호를 따라 강문해변까지 걷고 싶었다. 바닷가의 소나무 사이로 갓 떠오른 태양을 보고 싶었고, 솔바람 소리도 듣고 싶었다. 오죽헌 앞 삼거리에서 신호등을 기다리다 발걸음을 돌렸다. 과하게 넓은 도로는 너무 시끄러웠으므로 그곳을 당장 피하고 싶었다. 그러나 저녁에는 갈 것이다. 오죽헌 삼거리의 소란스러움이 잠잠해질 때, 그곳을 넘어 메타세콰이어가 나란히 심겨진 습지로 갈 것이다. 습지를 지나 경포호를 따라 걸을 것이다. 강문해변에 도착하면 내가 좋아하는 자리에 앉아 호흡을 고르고, 오랫동안 바닷바람을 견뎌왔을 소나무를 느낄 것이다. 이 소나무들은 방풍림이라고 불린다. 본래부터 방풍림이라고 불렸을까? 1892년 5월, 현재는 동해시가 된 도하면, 견박면, 도상면의 북삼면에 사는 김병익 등 9명이 삼척부사에게 청원을 담은 첩정(牒呈)을 올렸다.
북삼면 백성 들이 아뢰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