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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아들 사랑
아들 형묵의 이름과 자를 명명하는 글
[命子衡默名字說(A010_01_A00079_001)] 김철운(율곡연구원) 오늘날 경제력에 의해 사회의 대부분이 좌우되는 현실에서 공자(孔子)가 말한 “아버지는 아버지답다(父父).”의 “~답다”는 사람들에게 구체적으로 어떠한 의미로 받아들여질까? 즉, 자식에 대한 아버지의 역할을 무엇이고, 또한 자식에게 아버지는 어떤 존재이며, 어떤 모습으로 비춰질까? 과연 아버지의 자식 사랑에는 방점이 있는가? 그런데 대체로 사람들이 자신의 아버지에 대해 이야기할 때 간혹 아버지란 존재는 근접하기 어려운 감은 있으나 한편으로 그 존재가 옆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편안함을 느낀다고 말하곤 한다. 이렇게 보면 “현재의 ‘아버지’는 현재의 ‘자식’에게 어떻게 비춰질까?”라는 물음은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율곡연구원의 수장고에는 많은 전적류(典籍類) 이외에도 교지(敎旨), 간찰(簡札), 명문(明文), 분재기(分財記) 등 다양한 고문서들이 즐비한...
순포산에 선조를 모시기까지 : 청풍당의 산송 이야기
이종록(율곡국학진흥원)
1. 밤중에 갑자기 생긴 무덤 1892년(고종 29), 청풍당의 가주 권영진(權永鎭, 1859~1934, 개명 전 權遠植)은 증조부 권기영(權基榮, 1782~1812)의 묘를 하남면(河南面) 순포리(蓴浦里) 즉, 현재 사천면(沙川面) 산대월리(山帶月里)로 이장하려 했다. 청풍당은 이미 묏자리를 정하고 길일도 잡아 두었다. 발괄[白活]에는 이장 날짜가 “이달 보름 무렵”으로 적혀 있고, 간찰에는 “지난해 10월 10일”로도 기록되어 있다. 자료마다 날짜 표현은 조금 다르지만, 청풍당이 1892년 10월 중순 무렵 권기영의 묘를 이장하려 했던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이장을 준비하던 중 뜻밖의 소식이 전해졌다. 9월 7일, 산 아래 집터에 살던 김씨 양반이 찾아와 “9월 4일 밤에 어떤 자가 청풍당에서 정해 둔 자리에 몰래 묘를 썼다”고 알려온 것이다. 급히 가서 살펴보니, 과연 그곳에는 조성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작은 봉분이 있었다. 흙빛이 아직 ...
방풍림이라고 불렸을까?
정우진(율곡연구원) 2025년 5월 20일 5시에 눈을 떴다. 아직 어두운 기운이 걷히지 않았다. 경포호를 따라 강문해변까지 걷고 싶었다. 바닷가의 소나무 사이로 갓 떠오른 태양을 보고 싶었고, 솔바람 소리도 듣고 싶었다. 오죽헌 앞 삼거리에서 신호등을 기다리다 발걸음을 돌렸다. 과하게 넓은 도로는 너무 시끄러웠으므로 그곳을 당장 피하고 싶었다. 그러나 저녁에는 갈 것이다. 오죽헌 삼거리의 소란스러움이 잠잠해질 때, 그곳을 넘어 메타세콰이어가 나란히 심겨진 습지로 갈 것이다. 습지를 지나 경포호를 따라 걸을 것이다. 강문해변에 도착하면 내가 좋아하는 자리에 앉아 호흡을 고르고, 오랫동안 바닷바람을 견뎌왔을 소나무를 느낄 것이다. 이 소나무들은 방풍림이라고 불린다. 본래부터 방풍림이라고 불렸을까? 1892년 5월, 현재는 동해시가 된 도하면, 견박면, 도상면의 북삼면에 사는 김병익 등 9명이 삼척부사에게 청원을 담은 첩정(牒呈)을 올렸다.
북삼면 백성 들이 아뢰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