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디렉토리 분류 > 유형 분류
이 탁본은 주자의 「경재잠」 목판을 인출한 것으로, 주자의 대자초서로 알려져 있다. 조선 후기에는 주자의 수적(手蹟)으로 여겨진 글씨들이 널리 유포되었으며, 이 글씨 역시 당시 주자의 친필로 인식되었다. 이 탁본을 소장한 청풍당에는 이보다 더 큰 대자초서로 쓴 ‘백세청풍(百世淸風)’ 편액이 걸려 있으며, 이를 당호로 삼았다. 이러한 사실을 통해 청풍당 역시 주자의 수적을 숭상하고 향유하던 조선 후기의 문화에 동참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주자의 대자초서로 전하는 「경재잠」 목판 가운데 가장 이른 선본으로 알려진 것은 강진 남강사 어필각에 소장된 목판이다. 남강사는 주자를 주향하고 송시열을 배향한 사당으로, 전라남도 강진에 있다. 전승에 따르면 송시열은 1689년(숙종 15) 제주도로 유배되던 중 폭풍으로 배가 출항하지 못하자 인근 백련사에 머물며 강학하였다고 한다.
그로부터 약 120년 뒤인 1809년, 성자포 앞바다에 떠밀려 온 나무궤에서 ‘주자경재잠목판(朱子敬齋箴木板)’ 20매와 ‘대우수전(大禹手篆)’ 8매가 발견되었다고 전한다. 1844년(헌종 10) 광주목사 조철영은 「대우전주자필경재잠판기(大禹篆朱子筆敬齋箴板記)」에서 명나라가 멸망하고 중원이 혼란에 빠지자, 뜻있는 선비들이 성현의 수적이 오랑캐에게 더럽혀지는 것을 막기 위해 이를 궤에 넣어 바다에 띄워 보낸 것으로 이해하였다.
현재 강릉향교에도 이와 같은 「경재잠」 목판이 전래하고 있는데, 남강사 소장 목판을 모각(模刻)한 것으로 보인다. 청풍당에 전래된 탁본은 지리적 연관성을 고려할 때 강릉향교 소장 목판에서 인출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이 탁본은 목판 20매를 모두 찍은 완질이지만, 제8판은 두장, 제11판은 세장 인출하여 전체 수량은 모두 23장이다.
한편 이 목판의 글자는 현재 일반적으로 알려진 「경재잠」 원문과 일부 글자와 구두에서 차이를 보인다. 이러한 차이로 미루어 볼 때, 이 글씨는 주자가 직접 쓴 글씨를 그대로 새긴 것이 아니라 주자의 여러 글씨를 집자하여 제작하였을 가능성이 있다. 다만 글자와 구두의 차이가 발생한 원인에 대해서는 크게 두 가지 가능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 당시 통용되던 「경재잠」의 이본을 바탕으로 제작되었을 가능성이다. 둘째, 주자의 글씨를 집자하고 목판에 새기는 과정에서 착오가 발생했을 가능성이다. 현재로서는 목판의 제작과 전래에 관한 자료가 충분하지 않으므로, 정확한 성격과 계통은 향후 연구를 통해 밝혀져야 할 것이다.
경재잠 원문은 다음과 같다.
朱子敬齋箴曰
正其衣冠 尊其瞻視 潛心以居 對越上帝
足容必重 手容必恭 擇地而蹈 折旋蟻封
出門如賓 承事如祭 戰戰兢兢 罔敢或易
守口如甁 防意如城 洞洞屬屬 罔敢或輕
不東以西 不南以北 當事而存 靡他其適
弗貳以二 弗參以三 惟心惟一 萬變是監
從事於斯 是曰持敬 動靜弗違 表裏交正
須臾有間 私欲萬端 不火而熱 不氷而寒
毫釐有差 天壤易處 三綱旣淪 九法亦斁
於乎小子 念哉敬哉 墨卿司戒 敢告靈臺
제목 없음
①正其衣冠 尊其瞻視 ②潛心以居 對越上帝
③足容必重 手容必恭 ④擇地而蹈 折旋蟻封
⑤出門如賓 承事如祭 ⑥戰兢罔敢 或易守口
⑦如甁防意 如城洞屬 ⑧不東以西 不南以北(2)
⑨當事而存 靡他其適 ⑩弗貳以二 弗參以三
⑪惟靜惟一 萬變是監(3) ⑫從事於斯 是曰持敬
⑬動靜無違 表裏交正 ⑭須史有間 私欲萬端
⑮不火而熱 不氷而寒 ⑯毫釐有差 天壤易處
⑰三綱旣淪 九法亦斁 ⑱於乎小子 念哉敬哉
⑲墨卿司戒 敢告靈臺 ⑳無敢或輕 右敬齋箴 晦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