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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ㆍ자료ID
- A003_01_A00033_033
- ㆍ입수처
- 전주이씨 선교장
- ㆍ자료유형
- 고문서
- ㆍ유형분류
- 서간통고류-간찰(簡札)
- ㆍ주제분류
- ㆍ문서명
- 1820년 윤행철 간찰 / 尹行澈 簡札
- ㆍ발급자
-
윤행철(尹行澈, ?~?)
원문내용추정
- ㆍ수취자
-
원문내용추정
- ㆍ지역정보
-
발급지역수취지역
- ㆍ발급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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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0년 8월 15일간지연도왕력추정시기본문 庚辰秋夕日
- ㆍ형태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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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수크기 ×접은크기 ×서명인장종수인문판독보존상태언어자료형태 점련문서
- ㆍ정의
- 이 간찰은 1820년 7월 7일에 윤행철(尹行澈, 1766~?)이 지인에게 보낸 편지이다. 편지의 발신과 수신이 명확히 기록되어 있고, 형제 간의 유대와 더불어 혼인, 가세, 일상적 곤궁 등의 문제를 솔직히 서술하였다.
- ㆍ기타사항
- ㆍ현소장처
- ㆍ지정문화재
- 이름 분류 지정년도
이 간찰은 1820년 7월 7일에 윤행철(尹行澈, 1766~?)이 지인에게 보낸 편지이다. 편지의 발신과 수신이 명확히 기록되어 있고, 형제 간의 유대와 더불어 혼인, 가세, 일상적 곤궁 등의 문제를 솔직히 서술하였다. 또한 발신자가 혼인 문제로 세 차례 기일을 미루었다고 고백하는 대목은, 조선 후기 혼례 과정에서의 재정적 곤궁과 현실적 난관을 드러내는 사례이다. 서간을 통해 친족 간 경제적 지원과 정서적 격려가 오갔음을 보여주는 점에서, 사회사적·생활사적 가치가 있다.
윤행철은 본관은 파평, 자는 계함(季涵)이다. 1792년 식년시(式年試)에 합격한 뒤 영릉령(永陵令), 화순 현감, 한성 서윤(漢城庶尹), 금천 군수 등을 지냈다.
내용을 살펴보면, 발신자는 먼저 영우(寧友)의 귀향 덕분에 형의 근황을 전해 듣고 오랜 그리움이 조금이나마 해소되었다고 전했다. 이어 형이 보낸 편지를 받으며 마치 얼굴을 마주한 듯 감격스럽다고 하였고, 새로이 찾아온 서늘한 계절 속에서 형의 건강과 정무가 무사히 유지됨을 축원하였다. 그는 세월의 무상함을 언급하면서 젊은 시절 서석(瑞石)에서 함께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이제는 서로 늙어감을 한탄하였다. 자신의 근황에 대해서는 자세히 전하지 않으려 했으나, 최근 혼인 문제가 연거푸 세 차례 미뤄져 더는 감히 추진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번에 형이 뜻밖에 여러 가지 물품과 은혜를 내려주었으니, 이를 계기로 다시 혼인 준비에 착수할 수 있음을 밝히며, 가난한 자신의 형편을 잘 아는 형의 깊은 배려 덕분이라고 감격을 토로하였다. 그는 궁핍한 선비의 종이 사정이 더욱 어려워져 일상 용도가 몹시 긴박하다고 호소하면서, 형이 보내준 종이와 생활 물자가 실제로 절실한 도움이 되었음을 강조하였다. 끝으로 한 번 편지를 펼쳐 읽을 때마다 형을 떠올리고, 다시금 생각이 깊어진다며 애틋한 정을 드러내고, 자신의 부족한 서술을 사양하면서 형의 너그러운 이해를 청하고 있다.
제목 없음
近因寧友之歸 獲聞邇/來消息 稍豁阻懷 卽拜/下狀 奉翫心畫 如對顔範/ 況伏審 新涼/調體夬復 視政萬護 區區/慰荷 無以名言 年來衰/相 故人亦然 回思瑞石之/時 只有少壯幾何之歎也/ 奈何奈何 弟狀 想因申友入/聞 又何足多提 但婚事/ 凡前後三退期 更不敢生/意 自此躁悶 際玆/惠貺之多 出於望外 自此庶/幾着手 而如非知仲之貧/ 何以及此 窮途之感 中/心藏之 何日忘之 僕僕之至 不/容爲喩 窮措大紙政 近益/艱乏 又得伴惠 日用/甚緊切矣 一回披寫 當/一回起思也 餘姑不備/ 伏惟/下察
庚辰秋夕日 弟 行澈 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