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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ㆍ자료ID
- A003_01_A00030_031
- ㆍ입수처
- 전주이씨 선교장
- ㆍ자료유형
- 고문서
- ㆍ유형분류
- 서간통고류-간찰(簡札)
- ㆍ주제분류
- ㆍ문서명
- 1811년 이상황 간찰 / 李相璜 簡札
- ㆍ발급자
-
이상황(李相璜, 1763~1841, 개인)
원문내용 侍生 李相璜추정
- ㆍ수취자
-
원문내용추정
- ㆍ지역정보
-
발급지역수취지역
- ㆍ발급시기
-
1811년 1월 20일간지연도 辛未왕력추정시기본문 辛未正月二十日 侍生 李相璜 再拜
- ㆍ형태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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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수크기 ×접은크기 ×서명인장종수인문판독보존상태언어자료형태 점련문서
- ㆍ정의
- 이 간찰은 1811년 1월 20일에 이상황(李相璜, 1763~1841)의 편지로, 조선 후기 문사 간의 안부 편지에 해당하며, 발신자의 생활 여건과 심리적 고충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단순한 의례적 문안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
- ㆍ기타사항
- ㆍ현소장처
- ㆍ지정문화재
- 이름 분류 지정년도
이 간찰은 1811년 1월 20일에 이상황(李相璜, 1763~1841)의 편지로, 조선 후기 문사 간의 안부 편지에 해당하며, 발신자의 생활 여건과 심리적 고충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단순한 의례적 문안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 특히 발신자가 자신이 머무는 지역의 환경적 특수성과 개인적 병환, 행정·사교적 부담을 동시에 토로하고 있어, 지방 체류 문인의 현실과 정서를 파악할 수 있는 사료다. 또한 자연환경(瘴嵐)과 생활 여건이 개인의 건강과 업무 수행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쳤음을 보여주며, 당시 지식인들의 현실 인식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이상황은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주옥(周玉), 호는 동어(桐漁) 또는 현포(玄圃)이다. 1787년에 문과에 급제한 뒤, 검열·황해도 관찰사·영의정 등을 역임하였다. 1835년에 『순조실록』 편찬을 주재하였다. 1838년 영의정을 사직하였으나, 이듬해 다시 영중추부사가 되었고, 업무 처리는 정성을 다해 주도면밀하게 말없이 실시하였다고 한다. 헌종의 묘정에 배향되었고, 시호는 문익(文翼)이다. 저서로는 『동어집(桐漁集)』·『해영일기(海營日記)』가 있다.
내용을 살펴보면, 발신자는 먼저 서남 지방이 멀리 떨어져 있어 소식을 자주 전하기 어렵다고 밝히며, 그간의 노고와 수신자의 건강을 깊이 염려한다. 이어서 상대가 머무는 곳의 풍광을 언급하면서, 비록 그곳이 벽성(碧城)처럼 좋은 경사에 해당하고 물 또한 나쁘지 않지만, 산에 기대고 바다를 마주한 지세 탓에 장마와 습한 기운이 사람을 괴롭혀 건강을 해칠까 염려된다고 한다. 그 때문에 수신자가 이곳에서 직무를 수행하는 데 지장이 있지 않을까 걱정된다는 뜻을 전한다. 이어서 발신자 자신의 처지를 말하면서, 이곳에 온 지 이미 한 해가 지났지만 여러 업무가 뒤엉켜 정리되지 않고, 처음 왔을 때와 다름없는 답답한 상황이라고 토로한다. 병환도 여전히 따라붙어, 평상시의 응대조차 스스로 감당하기 어려울 지경이라며, 공사 모든 일이 더욱 마음을 괴롭힌다고 고백한다. 끝으로는 마침 절기에 맞추어 부채를 보내며, 간단히 안부를 전하고 장황한 말을 줄인 채 상대의 살핌을 간청하며 편지를 맺는다.
제목 없음
西南遼夐 憑候實/難耿耿者 伏用勞𨓏/ 省體動止 伏惟對時/護相 碧城固是佳慶/水土亦自不惡 而但倚山/臨海 瘴嵐頗惱人 恐/或有妨於/節宣 是用獻念 侍生 來/此已周歲 而百務之泯/棼 無定緖 猶如來之時 病/且隨之 今則幷與尋常/應酬 而不能自力公私/ 事轉見悶戚戚/耳 玆因節扇/便 略申/起居 不備 伏惟/下察 再拜上候書/
辛未正月二十日 侍生 李相璜 再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