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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ㆍ자료ID
- A003_01_A00030_023
- ㆍ입수처
- 전주이씨 선교장
- ㆍ자료유형
- 고문서
- ㆍ유형분류
- 서간통고류-간찰(簡札)
- ㆍ주제분류
- ㆍ문서명
- 1799년 윤행임 간찰 / 尹行恁 簡札
- ㆍ발급자
-
윤행임(尹行恁, 1762~1801, 개인)
원문내용 孤哀子 尹行恁추정
- ㆍ수취자
-
구익(具㢞)
원문내용 咸鏡監司추정 具㢞. 1799년 함경도 관찰사 역임.(승정원일기)
- ㆍ지역정보
-
발급지역수취지역
- ㆍ발급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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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9년 11월 8일간지연도 己未왕력추정시기본문 己未十一月初八日 孤哀子 尹行恁 稽顙
- ㆍ형태정보
-
점수크기 ×접은크기 ×서명인장종수인문판독보존상태언어자료형태 점련문서
- ㆍ정의
- 이 문서는 1799년 11월 8일에 윤행임(尹行恁, 1762~1801)이 함경도 감사에게 올린 답서로, 지방 감사라는 최고 지방관에게 올린 공식적이고도 존경을 표하는 문안 서간이다.
- ㆍ기타사항
- ㆍ현소장처
- ㆍ지정문화재
- 이름 분류 지정년도
이 문서는 1799년 11월 8일에 윤행임(尹行恁, 1762~1801)이 함경도 감사에게 올린 답서로, 지방 감사라는 최고 지방관에게 올린 공식적이고도 존경을 표하는 문안 서간이다. 발신자는 스스로를 ‘고애자(孤哀子)’라 칭하며, 자신이 부모를 모두 잃고 상중에 있음을 밝혔다. 이 편지는 지방관과 향촌 유생 간의 관계, 관청과 사족 사이의 교유, 그리고 지방에서 중앙 관원에게 바라는 기대와 정서를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적 가치를 지닌다. 특히 발신자가 개인적 병환과 슬픔을 토로하면서도 감사의 권위와 공적 활동을 높이 찬미하는 모습은 조선 후기 사회의 위계와 정서 구조를 드러내는 자료이다.
윤행임은 편지 서두에서 오랜만에 답신을 올리게 되었음을 밝히며, 감사가 보낸 서신을 받들고 깊은 존경과 위로의 마음을 표하였다. 특히 감사가 먼 북방 변경까지 순무하며 국사를 돌보는 가운데 건강이 무사하다는 소식을 접하고 크게 위안을 얻었다고 서술하였다. 그는 또한 감사가 문장을 잘 짓는 인물임을 칭송하면서, 이번 순무 과정에서 반드시 걸작이 나와 북해의 웅장한 문장과 겨룰 만할 것이라 높이 평가하였다. 이어 발신자는 종친 중에서 과거에 급제한 이가 있어 가문의 명예가 크게 빛났다는 소식을 전하며 이를 진심으로 축하하였다. 그러나 윤행임 자신의 상황은 밝지 않았다. 스스로를 ‘고애자’라 칭하며 상중에 있음을 토로하고, 양기가 회복되는 시절이 되었음에도 오히려 쇠약과 슬픔이 더해져 하루하루가 힘겹다고 하였다. 이어 감사가 보내준 여러 가지 물품, 특히 약재는 당시 자신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이었음을 강조하며 깊은 감사를 표하였다. 그는 이 은혜를 단순히 물질적 보답으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정성 어린 관심으로 받아들이며 거듭 감사를 표시하였다. 마지막으로 세월이 흘러 해가 저물어 가는 듯한 심정을 드러내며, 이웃 고을에서도 교화가 널리 퍼지고 있음을 언급하면서, 더는 길게 쓰지 못하고 황망히 서신을 맺었다.
윤행임은 본관 남원(南原). 초명은 윤행임(尹行任). 자는 성보(聖甫), 호는 석재(碩齋). 윤홍(尹泓)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용안군(龍安君) 윤종주(尹宗柱)이다. 아버지는 익찬(翊贊) 윤염(尹琰)이며, 어머니는 조종철(趙宗哲)의 딸이다. 이조참판, 홍문관제학, 전라도관찰사 등을 역임했다.
제목 없음
咸鏡監司台座下執事
答疏上 稽顙謹封
稽顙白 瞻言嚮𨓏 曷日懸徐 伏承/下疏 恭審比來/台旬體動止衛重 區區哀慰 奚翅一拜/節旄遠巡朔漠 必有高文傑句 可以與北海爭/雄矣/ 令從氏科名甚壯矣 何等仰賀 孤哀子 頑喘尙支/ 又當陽復之月 撫時號霣 俯仰茫茫/ 俯惠諸種 莫非緊需 而藥用之物 特出/厚眷 謹領珍感 鳴謝僕僕 歲色垂暮 乃鄰/棠化日洽 不次荒迷 謹上謝疏/
己未十一月初八日 孤哀子 尹行恁 稽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