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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ㆍ자료ID
- A003_01_A00030_022
- ㆍ입수처
- 전주이씨 선교장
- ㆍ자료유형
- 고문서
- ㆍ유형분류
- 서간통고류-간찰(簡札)
- ㆍ주제분류
- ㆍ문서명
- 1800년 이가환 간찰 / 李家煥 簡札
- ㆍ발급자
-
이가환(李家煥, 1742~1801, 개인)
원문내용 弟 家煥추정
- ㆍ수취자
-
이병정(李秉鼎, 1742~1804)
원문내용 咸營節下執事추정 李秉鼎(1742-1804)으로 비정됨. 승정원일기 1800년 8월에 함경도 관찰사 역임.
- ㆍ지역정보
-
발급지역수취지역
- ㆍ발급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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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0년 4월 13일간지연도 庚申왕력추정시기본문 庚申四月十三日 弟 家煥 拜
- ㆍ형태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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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수크기 ×접은크기 ×서명인장종수인문판독보존상태언어자료형태 점련문서(여러 장의 간찰을 粘連하여 두루마리로 정리한 자료)
- ㆍ정의
- 이 문서는 1800년 4월 13일에 이가환(李家煥, 1742~1801)이 함경도 감사에게 보낸 간찰이다.
- ㆍ기타사항
- ㆍ현소장처
- ㆍ지정문화재
- 이름 분류 지정년도
이 문서는 1800년 4월 13일에 이가환(李家煥, 1742~1801)이 함경도 감사에게 보낸 간찰이다. 서지적으로는 안부 편지의 형식으로, 상관이나 존경의 인물에게 안부를 여쭙고 자신의 사정을 아뢰는 전형적인 문안 편지이다. 특히, 친족의 상(喪)과 관련된 애도 표현, 자신의 병세와 곤궁한 상황, 그리고 서책 및 자료(邑誌)의 송부 요청 등이 함께 나타나 있어 당대 사대부의 교유 관계와 사회적 네트워크를 보여주는 중요한 사료적 가치를 지닌다. 또한 문중의 상례(喪禮), 학문 교류, 인사·자료 청탁이 한 편지 안에 복합적으로 드러나 있어 조선 후기 서간문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된다.
이가환(李家煥)의 본관은 여주(驪州), 자는 정조(廷藻), 호는 금대(錦帶)·정헌(貞軒)이다. 1777년 문과에 급제한 뒤, 비인 현감·개성부 유수·대사성 등을 역임하였다. 천문학과 수학에 정통하였고, 정약용(丁若鏞)·이벽(李蘗)·권철신(權哲身) 등과 교유하였다. 저서로는 『금대유고(錦帶遺稿)』, 『금대집(錦帶集)』, 『금대시문초(錦帶詩文鈔)』가 있다.
발신자는 먼저 오랜만에 문안드리게 된 감회를 밝히고, 상대방의 가문에 상을 당한 소식을 접하고 놀람과 비통함을 감추지 못하였다. 특히 형을 잃은 슬픔이 너무도 크니 이를 어찌 견디겠는가 하며, 반복적으로 비애와 안타까움을 토로하였다. 이어서 여름이 다가오는 시점에서 수신자의 복중(服中) 건강을 염려하며 안부를 물었다. 발신자 자신은 병으로 위축된 생활을 이어가며 쇠약해져 특별히 전할 만한 근황도 없다고 하였다. 그는 또 이전에 부탁한 남북도의 읍지(邑誌)에 대해 상기시키며, 이미 영내(營下)에 도화(圖畵) 담당자와 여러 영리(營吏)가 있으니 크게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라 하며, 부디 서둘러 보내줄 것을 요청하였다. 이어 친지의 병환이 더욱 심각해져 내년 과거 준비마저 위태롭다고 하면서, 뜻밖의 행로에 나서 몸을 떠나게 된 상황을 설명하였다. 따라서 반드시 서신이 도착하는 즉시 만나 처리해 주어야 한다고 거듭 강조하였다. 그는 그 인물이 훌륭한 선비이므로 직접 만나보면 알게 될 것이라고 덧붙이며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였다. 말미에서는 자신의 병세가 조금은 회복되기를 바란다고 밝히면서, 오직 수신자의 건강과 안녕을 기원하며 서둘러 글을 맺었다.
수취자 이병정은 조선 후기 문신으로, 한성판윤, 예조판서, 함경감사 등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다.
제목 없음
咸營節下執事
貞洞李判書候狀 謹封
省式言 逖違雅誨 瞻悵不須/言/ 令季老兄喪威 驚驚怛怛 更復何/喩 伏惟遠外承實 悲悼摧/痛 尤何以堪 悲傃無已 遽然夏令/ 卽伏問/台服中體度若何 旋以輸傃 弟/ 一味病蟄 衰相層生 無足奉/聞 南北道邑誌 曾爲奉託 或/不忘記否 營下旣有畵/屬 又多營吏 諒非甚難 幸/須從速寄惠 以慰懸望 如何/
…
額爲明春 科…
其親患益苦…
出意外行…
以致身於…
以書煩 幸/須書到之/日 卽爲邀/見 成給草/料 俾得/歸護 如何/ 其人佳士/也 相見/自可知之/ 玆不更■/耳 餘■■/漸起 只伏冀/台旬候 對時安和 不備 伏惟/台照 謹拜上候狀/
庚申四月十三日 弟 家煥 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