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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ㆍ자료ID
- A003_01_A00030_015
- ㆍ입수처
- 전주이씨 선교장
- ㆍ자료유형
- 고문서
- ㆍ유형분류
- 서간통고류-간찰(簡札)
- ㆍ주제분류
- ㆍ문서명
- 1810년 조윤대 간찰 / 曺允大 簡札
- ㆍ발급자
-
조윤대(曺允大, 개인)
원문내용 戚下 允大추정
- ㆍ수취자
-
홍희신(洪羲臣)
원문내용 海營春軒執事추정 洪羲臣 1810년 황해도 관찰사 였음.
- ㆍ지역정보
-
발급지역수취지역
- ㆍ발급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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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지연도 庚午왕력추정시기본문
- ㆍ형태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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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수크기 ×접은크기 ×서명인장종수인문판독보존상태언어자료형태 점련문서
- ㆍ정의
- 이 문서는 1810년 8월 21일에 조윤대(曺允大, 1748-1813)가 황해 감사에게 보낸 간찰이다. 문체는 정중하면서도 친밀한 어법을 담은 전형적인 사적 간찰의 형식을 따른다.
- ㆍ기타사항
- ㆍ현소장처
- ㆍ지정문화재
- 이름 분류 지정년도
이 문서는 1810년 8월 21일에 조윤대(曺允大, 1748-1813)가 황해 감사에게 보낸 간찰이다. 문체는 정중하면서도 친밀한 어법을 담은 전형적인 사적 간찰의 형식을 따른다. 조선 후기 사대부의 정원 경영과 교유 문화를 보여주며, 발신자가 정자를 꾸미기 위해 괴석을 구하려 하고, 이를 친교가 있는 인물에게 청한 사실은 당시 정원 장식과 수석(壽石) 문화가 사대부 교류의 중요한 일환이었음을 보여주는 등, 당대 사대부의 생활 공간, 미적 취향, 교류 방식을 살펴볼 수 있는 자료적 가치를 지닌다.
조윤대는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사원(士元), 호는 동포(東浦)이다. 1779년 문과에 급제한 뒤, 예문관 검열, 이조 참의·이조 참판 등을 역임하였다. 1810년 8월 5일에 한성부 판윤이 되었다. 저술로 『최열사전(崔烈士傳)』 등이 있다.
편지는 먼저 발신자가 북방에서 돌아온 뒤 이미 수신자의 행차가 서쪽으로 물러갔음을 안타까워한다. 이에 여전히 흠모하는 정을 거두지 못한 채 하염없이 바라보는 심정을 토로한다. 이어 계절적 표현을 곁들여, 지금 이 가을 무렵 수신자의 기체가 더욱 건강하고, 때때로 산수와 누대를 거닐며 시를 읊는 한가로운 풍치를 누리고 있음을 들었다며, 이를 크게 기쁘게 여기고 축하한다고 적었다. 그러나 자신은 여전히 공무에 얽매여 피곤하고, 번거로움 속에서 지내는 처지임을 밝힌다. 이어 자신의 집에 작은 정자가 있으나 잡초가 무성하고 제대로 가꾸지 못해 허전하다면서, 마침 상대의 집에 기괴한 돌이 네댓 점 있는데 특별히 쓰임이 없는 것으로 들었다고 하여, 이를 잠시 빌려다 정자에 두고자 간절히 요청하였다. 발신자는 수도로 돌아가는 날 반드시 온전히 돌려드릴 것이니 염려 말아 달라고 재차 강조하며, 빠른 답신을 희망하였다.
제목 없음
海營春軒執事
京兆尹 候書 謹封
自北歸來/ 華旆已西矣 慕仰/之私 曷勝瞻注 秋意/日淸 伏惟此時/台體動止萬珍 仰慰且/傃 不任區區 仄伏聞/氣度日益康旺 時有山/水樓臺 登眺觴詠之趣云/ 爲之仰艶且賀 恨未得/
…
公務 從以惱擾…
是勞碌生涯…
湖遠莫致之…
園有小亭 蕪翳不/治 近欲經濟山林 而無/賁飾之物 聞貴宅/有怪石四五/間者 無管/領 幸姑/許借 玩以/助園亭一/日之娛 如何如何/ 待歸駕/返都之日 謹/當璧完/ 勿慮下借 如/何 屈指以俟/ 望卽賜答/焉 餘適擾/甚 不備 伏惟/下察 謹拜上候/狀
庚午八月卄一日 戚下 允大 拜手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