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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ㆍ자료ID
- A003_01_A00030_011
- ㆍ입수처
- 전주이씨 선교장
- ㆍ자료유형
- 고문서
- ㆍ유형분류
- 서간통고류-간찰(簡札)
- ㆍ주제분류
- ㆍ문서명
- 미상년 미상인 간찰 / 簡札
- ㆍ발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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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내용추정
- ㆍ수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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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내용추정
- ㆍ지역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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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급지역수취지역 선교장
- ㆍ발급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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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6년간지연도왕력추정시기본문 惠慶宮禮陟 慟廓惟均
- ㆍ형태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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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수크기 ×접은크기 ×서명인장종수인문판독보존상태언어자료형태 점련문서(여러 장의 간찰을 粘連하여 두루마리로 정리한 자료)
- ㆍ정의
- 이 문서는 모년 모월 모일에 화영(華營)에서 백치진헌(白峙鎭軒)에 보낸 편지이다. 발신자가 ‘복인(服人)’으로 자칭하며 상중에 있음을 드러냈다.
- ㆍ기타사항
- ㆍ현소장처
- ㆍ지정문화재
- 이름 분류 지정년도
이 문서는 모년 모월 모일에 화영(華營)에서 백치진헌(白峙鎭軒)에 보낸 편지이다. 발신자가 ‘복인(服人)’으로 자칭하며 상중에 있음을 드러냈다. 시기는 구체적으로 명시되지 않았으나, 혜경궁(惠慶宮)의 상(喪)과 관련된 시점, 즉 조선 후기 1816년쯤에 작성된 편지임을 알 수 있다. 이 문건은 국가적 상례에 따른 예장(禮葬)과 지방 향리의 부담, 그리고 개인의 병환 속 고충이 어우러진 내용을 구성된다. 발신자가 직접 국가 의례에 필요한 업무를 담당해야 하는 자리였으나, 병으로 인하여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난처한 사정을 토로한 것이 특징적이다. 따라서 본 서간은 국가 의례의 지방 집행 과정과 개인의 생활적 현실이 교차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사료적 가치를 가진다.
편지의 서두에서 발신자는 먼저 혜경궁의 승하와 장례 의례를 언급하며, 그 충격과 비통함이 온 나라에 동일하게 미쳤음을 강조한다. 온 백성이 고통과 슬픔을 함께 나누고 있다는 점을 밝히고, 이어서 혹독한 추위와 농사 시기의 막바지라는 배경 속에서 더욱 깊은 근심과 무거운 정서를 드러내고 있다. 발신자는 본인이 ‘돈장(敦匠)’의 직책을 맡아 국가 의례를 보조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병으로 기력이 쇠해 맡은 일을 감당할 수 없는 현실을 토로하였다. 중반 이후 발신자는 국가적 동원 체제의 엄중함을 강조한다. 국가적 의례에 필요한 역이 워낙 방대하여 몇 사람의 힘으로는 분담하기 어렵다고 지적하며 관원을 교체한 뒤에 출발하겠다는 말을 전달한다. 이는 국가 장례가 단순한 조정의 의례를 넘어 지방 사회 전체에까지 영향력을 미쳤음을 보여주는 기록이라 할 수 있다. 편지의 말미에서는 본인의 신병으로 인한 곤혹과 고단함을 다시 한번 드러낸다. 심신이 지치고 사정이 번거로워 장황히 글을 이어가지 못하고 여기서 멈춘다고 한다.
제목 없음
白峙鎭軒 卽納
華營書狀 省式謹封
惠慶宮禮陟 慟廓惟均/ 伏惟窮臘/令履增相 瓜已告熟 想惟浩/然 馳念馳念 服人 猥當敦匠 則顧/此病憒 抵當無望 奈何/ 國役極爲浩大 而此中數人/ 末由分排擔當 令適當重/歸 故傳令 玆成邑 須於/交龜後 卽卽治發以來/ 深望深望 昏憊且擾 艱草止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