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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ㆍ자료ID
- A003_01_A00030_006
- ㆍ입수처
- 전주이씨 선교장
- ㆍ자료유형
- 고문서
- ㆍ유형분류
- 서간통고류-간찰(簡札)
- ㆍ주제분류
- ㆍ문서명
- 미상년 이만수 간찰 / 李晩秀 簡札
- ㆍ발급자
-
이만수(李晩秀, 1752~1820, 개인)
원문내용 侍生 李晩秀추정
- ㆍ수취자
-
이후(李垕, 1773~1832)
원문내용추정 李垕(1773-1832)로 비정됨.
- ㆍ지역정보
-
발급지역수취지역 강릉 선교장
- ㆍ발급시기
-
간지연도왕력추정시기본문
- ㆍ형태정보
-
점수크기 ×접은크기 ×서명인장종수인문판독보존상태언어자료형태 점련문서(여러 장의 간찰을 粘連하여 두루마리로 정리한 자료)
- ㆍ정의
- 이 문서는 모년 모월 모일에 이만수(李晩秀, 1752~1820)가 작성한 답상서(答上書)로, 조선 후기 유생(儒生) 간의 예문 구조를 잘 보여준다.
- ㆍ기타사항
- ㆍ현소장처
- ㆍ지정문화재
- 이름 분류 지정년도
이 문서는 모년 모월 모일에 이만수(李晩秀, 1752~1820)가 작성한 답상서(答上書)로, 조선 후기 유생(儒生) 간의 예문 구조를 잘 보여준다. 내용은 관청 출입과 관련된 일정, 상관에 대한 배례, 연회 참석 여부 등 구체적 상황을 언급하고 있어, 사대부 사회의 일상적 교류와 관직 생활의 긴밀한 연결을 엿볼 수 있는 자료다. 특히 상대의 말씀을 받들어 내일 연회에 참여하겠다는 의지와, 일정이 겹쳐 혹여 지체될까 하는 우려가 동시에 드러나 있어, 당시 사적 교유와 공적 의례가 긴밀히 맞물려 작동했음을 보여주는 사료적 가치가 있다.
이만수는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성중(成仲), 호는 극옹(屐翁)·극원(屐園)이다. 1789년 식년 문과에 급제한 뒤, 직각·교리·예조 판서 등을 역임하였다. 시호는 문헌(文獻)이다. 저서로는 『극옹집』이 있다.
편지는 먼저 그간 관청에 나아가 업무를 보느라 문안을 올리지 못했음을 사과하는 말로 시작한다. 발신자는 오랫동안 인사드리지 못한 아쉬움과 죄송스러움을 표현하며, 이제야 편지를 받들고 답신을 올리게 되었음을 밝힌다. 이어 상대방이 병환에서 점차 회복되어 평소의 건강을 되찾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크게 기뻐하며, 마치 직접 가르침을 접한 듯한 감격을 전한다. 이어서 그는 내일 있을 중요한 연회에 대하여 언급한다. 이미 며칠 전 영의정에게 하달된 지시를 받았는데, 다시 한번 참석을 당부하는 뜻을 받게 되어, 자신이 어찌 감히 사양하겠느냐며 극진한 정성을 다해 참여할 뜻을 밝힌다. 그러나 곧이어 그는 내일 일정이 바쁘고 사정이 분분하여 참석이 지체될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전한다. 혹시라도 시일과 차제가 어긋나 상대의 기대에 미치지 못할까 염려하면서, 미리 양해를 구하는 것이다.
제목 없음
答上書
鎭日赴公 久稽起居之/禮 區區瞻仰 暮伏承/下札 謹審/愼度漸復常節 仰/
慰如拜/下誨 明日盛筵 端揆閤/下 日前有敎 方欲趨參/末席 今/敎又勤 敢不翼如 而明/日卽日次 承批遲速/ 未敢料 恐或■■■/
…
不備書禮
卽 侍生 李晩秀 再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