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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료는 세 가지 문서가 함께 배접되어 있다. 첫 번째 문서에는 5언 율시의 시 한 수가 수록되어 있다.
이 시의 마지막에는 대원위(大院位) 소작시(所作詩)라고 작자와 관련된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이 부분을 통해 흥선대원군이 지은 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두 번째 문서에는 부채(扇子)에 관한 설명이 담겨 있다. 이는 당시 사대부들이 생활 필수품을 선물하고 기록에 남긴 사례다. 세 번째 문서는 봉물(封物)과 관련된 구체적 물목이다. 이 기록은 시문·증여물·봉물 명세가 함께 전해져 있어, 대원군의 문학적 소산과 더불어 조선 후기 정치·사회적 관계망 속에서의 물질 교류와 예물 문화를 동시에 보여준다.
구체적인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 번째 문서부터 차례대로 살펴보면, 고대 단군과 기자 이후 천년이 지나 사계절의 봄을 다시 얻었다고 시작하며, 종실이 왕실의 은혜를 누리지만 신하는 어지러운 세월에 말조차 할 수 없음을 토로한다. 왜적과 오랑캐의 기세가 성하고, 명예와 치욕이 땅에 가득한데 정작 개인의 처지는 알아주는 이 없다는 한탄이 담겨 있다. 두 번째 문서는 부채에 관한 설명이다. 발신자는 부채가 단순한 색선(色扇)이 아니라 늘 쓰는 상용품이며, 특별히 구하기 어려운 것이라며 78자루를 내려보내고, 나머지 1자루는 다른 물품과 함께 보냈다고 한다. 세 번째는 봉물과 관련된 구체적 물목이다. 운현(雲峴) 등지의 봉물은 이미 봄에 한 차례 보냈으니, 이번에는 따로 준비하지 않았다고 하며, 7월 봉물은 전례에 따라 대전(大殿)의 탄일에 맞추어 보낸다고 밝히고 있다. 이어서 실제 목록을 적어 놓았다. 목회판가(木灰板價) 2전 5푼, 색선(色扇) 2병, 인삼(人蔘) 3냥중(三兩重), 종자(鐘子) 1개, 개(盖) 2개, 항라낭(杭羅囊), 구영(俱纓), 조보(朝報) 3봉(三封), 책실에서 보낸 의봉(衣封) 1도(一度)가 기록되어 있다.
제목 없음
檀箕千載後 更得四時春
享役惟宗室 亂離/無聞臣
妖氛誼海狄 驕氣白江親
榮辱安/排地 誰知有一身
大院位 所作詩
扇子 非但色扇 雖常扇 更無求/得之道 故七十八柄下送 其/餘一柄 從便伴上計耳/
雲峴等處封物事 春/間已爲一番 而兄主旣見於/某某處 則今番置之矣/ 七月爲之似耳 七月則大/殿誕日故耳
木灰板價 二錢五分
色扇 二柄
人蔘 三兩重
鐘子 一箇 盖 二箇
杭羅囊 俱纓
朝報 三封
冊室所去衣封 一度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