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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ㆍ자료ID
- D004_01_A00724_001
- ㆍ입수처
- 오죽헌 시립박물관
- ㆍ자료유형
- 고문서
- ㆍ유형분류
- 서간통고류-간찰(簡札)
- ㆍ주제분류
- ㆍ문서명
- 미상년 신석퇴 간찰 / 申退錫 簡札
- ㆍ발급자
-
신석퇴(申退錫, ?~?)
원문내용추정
- ㆍ수취자
-
원문내용추정
- ㆍ지역정보
-
발급지역수취지역
- ㆍ발급시기
-
?년 1월 14일간지연도왕력추정시기본문 戊午元月念四日
- ㆍ형태정보
-
점수 1크기 18.9 × 98.6접은크기 ×서명인장종수인문판독보존상태언어자료형태
- ㆍ정의
- 첫번째 간찰은 부제(婦弟) 신퇴석(申退錫)이 형주(兄主)에게 보내어 장기간 만나지 못한 아쉬움과 성심어린 문안을 전하는 글이다. 두번째 간찰은 발신자가 지은 시(詩)와 율시(律詩)를 수신자인 ‘자형(姊兄) 이사백(李嗣伯)’에게 보이며 경서를 전달하는 문건으로, 단순한 문안(問安)이 아니라 시문 교유(詩文交遊)의 일환으로서 작성된 점에서 문학적 성격이 뚜렷하다.
- ㆍ기타사항
- 2:세로:25.3, 2:가로:37.2, 3:세로:25.4, 3:가로:5.4
- ㆍ현소장처
- ㆍ지정문화재
- 이름 분류 지정년도
이 간찰은 부제(婦弟) 신퇴석(申退錫)이 형주(兄主)에게 보내어 장기간 만나지 못한 아쉬움과 성심어린 문안을 전하는 글이다. 발신자는 과거 강구(江區)에서 이별한 뒤 수년이 지났음에도 한 번도 대면하지 못한 현실을 깊이 유감스럽게 여기며, 매번 그리움이 쌓여 마음속에 얽히고 맺혀 있는 심정을 토로하였다. 새해가 밝은 시점에 보낸 이 서찰은, 형가(兄家)의 원기 회복과 일상의 평온을 염원하며, 수신자의 몸이 약했던 근황이 차츰 회복되어 약에 의존하지 않는 경지에 이르렀는지[漸復勿藥之境]를 정중하게 묻고 있다. 이어 발신자는 자신의 처지를 부끄러움 섞인 어조로 적었다. 가군(家君)이 집을 떠나 외출한 뒤 아직 돌아오지 않아 근심이 깊고, 일상에서 행하는 공부(工夫)조차 결국 허명에 지나지 않는 듯하여, 자신의 삶이 마치 남의 일처럼 여겨져 알맹이 없는 상태에 머물러 있음을 자조하고 있다. 한 차례 형님을 찾아뵐 기회가 있었으나 그마저 이루지 못했음을 탄식하며, 최근 수신자의 누이(姊氏)가 혼례를 앞두고 있다는 소식에, 직접 축하하지 못하는 처지를 안타까워하였다.
특히 발신자는 형님이 젊고 한창 왕성할 나이[靑春之歲]임에도 불구하고 병을 핑계 삼아 문밖 출입조차 하지 않는다는 점을 의아하게 여기며, 세월은 누구도 기다려 주지 않으니[日月逝矣] 늦기 전에 서로 만나 뜻을 나눌 것을 간절히 바라는 마음을 표명하였다. 문장의 말미는 이 모든 정회(情懷)를 형식적 문안으로 마감하면서도, 진심으로 답신과 상봉을 갈망하는 여운을 남기고 있다.
이 간찰은 발신자가 지은 시(詩)와 율시(律詩)를 수신자인 ‘자형(姊兄) 이사백(李嗣伯)’에게 보이며 경서를 전달하는 문건으로, 단순한 문안(問安)이 아니라 시문 교유(詩文交遊)의 일환으로서 작성된 점에서 문학적 성격이 뚜렷하다. 서두에서 발신자는 시란 사람의 감정이 언어를 통해 흘러나온 것[詩言志, 歌永言]임을 인용하고, 자신의 재주는 비록 넉넉지 않으나[牛溲馬髮] 주부자(朱夫子)의 ‘짓되 숨김이 없다[有作而無諱]’는 가르침에 힘입어 감히 용기를 내어 지어 바친다고 밝혔다. 이는 자신의 시적 역량에 대한 겸사(謙辭)인 동시에 시를 통한 정서 소통 의지를 드러낸 부분이다. 이어서 발신자는 장계응(張季鷹) 장계응(張季鷹) : 계응은 장한(張翰)의 자(字)이다. 중국 서진(西晉) 사람으로, 가을 바람에 고향 오군(吳郡)의 전어·연근 등 계절 음식을 떠올리다가 관직을 버리고 돌아간 일화로 유명하다. 『晉書』 「張翰傳」에 따르면, 그는 강동(江東)에서 바람이 불어오자 고향 생각이 사무쳐 벼슬을 단념하고 돌아갔는데, 후대에서는 이를 향수·귀향·풍류적 은거의 상징으로 사용하였다. 문중에서 「江東之夕」라 한 것은 장계응이 귀향을 결심하게 되던 가을 저녁의 정황을 빌어, 이별 이후의 정한과 돌아감을 기약하는 정서를 드러낸 표현이다. 강동의 저녁노을과 소자경(蘇子卿) 소자경(蘇子卿) : 자경은 소무(蘇武)의 자(字)이다. 전한(前漢) 무제(武帝) 때의 사신으로, 흉노에 억류되어 19년 동안 귀국하지 못하였다. 『漢書』 「蘇武傳」에 보이는, 기러기 다리에 편지를 매어 고국에 소식을 전했다는 이야기에서 비롯되어, 후대 문인들은 먼 곳에 있는 이에게 정을 부치거나 소식을 전하는 상징으로 ‘기러기(雁)’와 소자경을 결부시켰다. 「上林之雁」은 이러한 전고를 활용하여, 직접 만나지 못하니 글과 시를 기러기에 실어 부친다는 의미를 비유적으로 나타낸 것이다. 상림의 기러기 등의 이미지를 통해, 떨어져 있는 자형을 사모하는 마음과 교유의 정을 한층 고조시키며, 그 정감의 결과로 율시(律詩) 2수와 가행체(歌行體) 3장을 지었음을 밝혔다. 작품들의 내용을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다.
가행(歌行): 기러기·산천·노을·강가의 달빛 등 자연 이미지를 배치하여 먼 곳에 있는 벗을 그리는 정한(情恨)을 감각적으로 형상화하였다. 떨어져 있음에도 꿈속에서조차 만남이 늦어지는 안타까움과, 멀리서 부는 바람에 실린 소식조차 간절히 기다리는 심경이 담겼다. 율시(律詩) 2수 : ① 자형과의 우애를 난초와 국화[蘭·菊]에 비유하여 시정과 문학적 교유가 서로의 인격을 닦아주는 관계임을 노래하였다.② 고향·풍류·가을꽃·술·강남 풍경 등을 소재로, 장차 함께 모여 시를 읊고 돌아가자는 유가적 전통의 정조를 담았다. 말미에는 『시경』 「위풍(衛風) 목과(木瓜)」의 구절 “投我以木瓜, 報之以瓊琚”를 인용하여, 비록 자신의 시문이 ‘옥 같은 선물’에 미치지 못하나, 정성만큼은 옥구슬[瓊琚]에 비길 만한 답례가 되기를 바란다는 뜻을 전하였다. 이는 시문 교환[唱酬]을 예(禮)와 정(情)의 실천으로 이해한 조선 지식인의 문학관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 문건은 단순한 우정 표현을 넘어, 시를 매개로 한 문인 네트워크의 정서 구조, 친족 간 문학 교유의 실천 방식, 자기표현에 대한 겸양·수허(守虛)의 태도, 『시경』 인용을 통한 전고(典故) 활용 능력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사례이다. 따라서 이 간찰은 개인의 정서가 시문 창작으로 승화되는 과정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진귀한 사료이며, 조선 후기 사족 문인들이 문학을 통해 관계를 조직하고 감정을 교류한 방식을 탐구하는 데 매우 중요한 자료적 가치를 지닌다.
제목 없음
禮谷 侍座下 執事
芝山 上候書
江區奉別 已逾數歲 尙未拜
晤 仰慕之懷 憧憧如結 謹未審
新元
侍餘調棣候 漸復勿藥之境耶
仰慕區區之至 婦弟 重闈姑安 伏
幸 而家君月初 遠駕而尙未返
次 伏慮何喩 所謂工夫 徒以伐
齊爲名 視若越人之肥癠耳
第聞一番之行 尙未逢晤 浩
歎不已 又聞姊氏 于禮日字不
遠 悵訝如新耳 春日載/
陽 今便枉駕如何/
兄主今靑春之歲 常
抱一病字
而不出戶扉
何耶 日
月逝矣 仰
慕之誠 不
啻朝三暮
四耳 餘不
備候禮
戊午元月念四日 婦弟
申退錫拜手
謹伏呈
姊兄 李嗣伯韻
序
書曰 詩言志歌永言 夫詩者
人心之感物 而形於言之
餘也 淺見博識 豈能知五
音六律也哉 適値張季
鷹江東之夕 幸寄蘇
子卿上林之雁 撼懷可緖
慕繞百倍 謹搆律二則
歌三章 其文也 未免於牛
溲馬髮 則不敢浼高明
之前 然朱夫子 有作而無
諱之訓 故玆以仰呈 幸須
一瞬經眼 而幸切衆人捧
腹置之瓊章之末 而等
之覆瓿之列 如何
聰明男子好風流 紫氣雙看不見
愁 蓮桂芳園名應樹 春塘他日步
雲遊 江齋秋夜月如期 千里吳州
每送思 心似首痰推枕臥 山河迢遞
夢猶遲 葭蒼露白萬頃波 永日溯
洄意若何 遠莫覯之固佇立 峨洋一
曲但長歌
律詩
菊弟蘭兄托契深 芳香隨處伴楓林
聯床談笑人如玉 閱歲信音爾莫念
多日疎齋陳榻掃 每逢佳節杜詩吟
始知禮巷隱君子 洛水慾波生動心
潭邊鴒鳥惜分飛 雲樹迢迢入翠微
金氣西天挑遠思 玉山故宅放蘊輝
王孫高義如今飽 學士淸標從古稀
會待江南風樹岸 黃花白酒詠而歸
詩云 投之(我)以木瓜 報
之以瓊琚 此詩也
不稱於木瓜之類
然情脩辭穩 特
賜瓊琚之報 如
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