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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허씨 (허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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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충현
반갑습니다 저는 율곡 국학진흥원에 재직하고 있는 책임연구위원 김충현이라고 합니다. 제가 학부, 석사, 박사를 다 한국사를 전공했어요. 조선시대를 전공을 했고 그래서 본의 아니게 제가 이런 일을 전문적으로 하지는 않았는데, 그래도 어깨 너머로 인터뷰어가 어떤 것을 여쭤보고 또 듣고 싶어 하는지를 수업을 통해 배우기는 했는데, 제가 매끄럽게 진행을 하지 못하더라도 편안하게 말씀을 해주시면 될 것 같아요. 선생님 성함 한번만 말씀해 주시겠어요?
허윤정
허윤정이요
김충현
예. 혹시 지금 사시는 곳이 어디신가요?
허윤정
저는 서울 강서구 마곡동이이에요.
김충현
원래 마곡동에 사셨어요? 아니면 다른 곳에서 성장을 하셨나요?
허윤정
성장이요? 저의 성장은 강원도 원주요
김충현
원주가 고향이세요? 저희가 강원지역을 대표하는 국학 연구기관이어서요.
허윤정
네. 강원지역 여고들은 고등학교 2학년이 되면 항상 오죽헌에 왔었어요. 그때 저희는 한복 입고 왔었어요. 2박3일 여기서 활도 쏘고, 그네도 타고, 캠프처럼 있었어요.
김충현
제가 듣기로는 친정에서 가지고 계시던 자료를 전달 받으셨다고 들었는데, 그러면 집안에 남자 형제가 없으셨던 건가요?
허윤정
남자 형제가 있는데 첫째 남동생은 지금 필리핀에 계속 있어서 제가 알기로는 친할머니가 갖고 계셨고 친할머니 돌아가신 다음에 그게 엄마한테 내려왔거든요. 그래서 남자들이 갖고 있는 건 모르겠고 저희 집안은 여자들이, 며느리들이 그거를 챙겨서 관리를 하고 있었거든요. 근데 어머니가 돌아가신 다음에 저희가 이거를 며느리가 갖고 갈 건지 아니면 어떻게 할 건지 고민하다가 저희 딸이 이거 이렇게 방치하면 안 된다. 저희가 관리하는 법을 모르니까, 저희 엄마 같은 경우는 옷장(사단옷장)에다가 정리를 하셨거든요. 근데 그 하는데 좀 한계가 있잖아요. 저희 엄마 같은 경우에는 다 신문지를 대시던가 해서 관리를 했는데 딸이 찾아보더니 이런 거를 해주는 데가 있다. 여러 군데 전화를 하더라고요. 그래서 만약에 딸이 그런 걸 안 했었으면 저희도 이제 저희 집 옷장 어딘가에 이렇게 있었겠죠.
김충현
사실은 저희가 그렇게 가정 내에 있는, 옷장 속에 들어가 있는 유물들을 좀 꺼내와야 하는 상황이긴 합니다. 혹시 그러면 어렸을 때 이 유물들 혹은 자료들을 평소에 잘 보실 수 있는 환경이셨겠네요.
허윤정
네
김충현
그럼 보통 언제 그렇게 좀 꺼내서 보셨나요?
허윤정
제가 어릴 때 초등학교 때는 그 문서들이 다 노천에 있었어요. 그래서 노천에 가면 그 뭐라고 해야되나 이렇게 여는 건데 이름은 정확하게 알지를 못하는데 서랍장은 아니고 그냥 통으로 되어 있는...
김충현
반다지 같은 건가요?
허윤정
그걸 뭐라고 표현하는지는... 그렇게 해서 이렇게 여는게 있거든요. 거기다가 할머니가 보관을 하시고 그리고 저희들은 가서 열려 있으면 보고... 그런 식이었어요.
김충현
그러면 그 할머니께서 이거는 어떤 물건이다, 어떤 내용이다 이런 거를 알려주셨나요?
허윤정
그런 말씀은 안 하시고요. 돈 되는 게 있을 것이라고 하셨어요.
김충현
그렇죠. 이제 일반인들이 생각하시기에는 그게 골동품 같은 거니까 뭔가 금액이 될 거다.
허윤정
그냥 제 생각에는 버리지 말라고 하신 말씀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해요.
김충현
이건 여담입니다만, 사실 문서는 그렇게 금전적인 가치는 거의 없어요. 근데 혹시라도 이제 집안에 그림이라든지...
허윤정
그전에 제가 고등학교 때인가? 고3 때인가? 대학교 때인가? 강원대학교에서 가져가셨어요. 그때 저희가 많이 보냈거든요. 그 할머니네 집에 있는 그림은 아니고 장식품이라든가 이런 것들은 강원대학교에서 가져가셨어요.
김충현
그 민속품 같은 것들을 가져가셨고?
허윤정
네 그쪽으로 다 갖고 가시고 나머지 책 같은 것만 저희가 갖고
김충현
그러면 그때 어떻게 박물관 쪽에서 나왔던가요?
허윤정
네. 박물관
김충현
그래요. 강원대 박물관에서요. 그러면 그때 혹시 무슨 목록이나 뭐 이런 거를 전달 받으셨나요?
허윤정
그거는 모르겠어요. 그냥 저희 어머니가 기증했다고 이렇게만 말씀을 하셔 갖고...
김충현
기증을 하셨던 거에요? 저희는 기증을 하셔도 되고 기탁을 하셔도 되는데 기증과 기탁이 다른 거는 아시죠?
허윤정
네.
김충현
그래서 혹시라도 나중에 필요하시다면 내 물건을 이제 돌려받겠다 하셔도 상관이 없고, 기증을 하시면은 그 소유권이 저희에게 넘어오는 그런 차이가 있다라고 하는걸 아시면 될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러면은 신문지와 신문지 사이에 보관을 하셨다라고 하는데 누가 가르쳐 주셔서 그렇게 하셨을까요? 아니면 할머니께서...
허윤정
그냥 저희 엄마가 그냥 생활의 지혜 아니었을까요? 그냥 저렇게 놔두면 부식될 것 같으니까 그나마 그렇게 하셨지 않았을까...
김충현
맞습니다. 집안에서는 신문지나 한지 사이에 껴놓으시는게 제일 확실히 보관하실 수 있는, 제일 좋은 방법이셨을 거예요. 가장 손쉽기도 하고 그래서 잘 보관을 하셨던 것 같습니다. 그러면은 이게 본래는 유물들이 원주에 있다가 선생님께서 이제 가지고 오시면서 서울로 옮겨갔고 그게 다시 저희한테 오게되는 그런 코스였던 것 같습니다. 그러면 혹시 제가 이렇게 다니다 보면은 유물이 없어질 법한 사례들이 좀 있더라고요. 예를 들어서 집에 홍수가 나서 물이 들어왔다든지 아니면은 집에 큰 화재가 있어서 사라지거나 그런 경우가 있는데 그런거 없이 되게 잘 보관을 하셨었나봐요.
허윤정
저희 엄마가 열심히 그거를 싸들고 다니셨던 것 같아요.
김충현
그러면 선생님 어머니께서 친정에서 받은 물건이었던건가요? 그러니까 친정의 유물인 거네요. 저는 신기해서 보통 자료는 남성 중심으로 전승이 되는데 선생님 댁은 여성이 주된 관리자 역할을 하시면서 이게 어떻게 보면은 옮겨온 (드문) 사례가 되서 제가 그 점이 궁금해서 여쭤봤습니다. 혹시 저희 기관은 어떻게 아시게 됐나요?
허윤정
저희 딸이 열심히 (검색을)해서..
김충현
따님께서는 어떻게 저희를 찾으셨어요?
허윤정 딸
그때 홍천문화원이랑 연락을 했는데, 그때 아마 문서, 고문서 관리는 이쪽이 더 전문이니까 연결해 주겠다고 말씀을 하셔서 그렇게 되었습니다.
김충현
홍천은 어떻게 연고가? 연결이...?
허윤정 딸
아뇨. 제가 한자 번역해 보니까 홍천 것이 맞는 것 같아서 홍천 것이면 홍천으로 가야되지 않을까 싶어서...
허윤정
딸내미가 엄마가 돌아가시고 저거를 어떻게 해야되는지 다들 남동생도 걱정은 했고, 저희도 그렇고 누군가는 저걸 책임지고 이제 관리를 해야 되는 거잖아요. 근데 저거를 관리하려면 공간 하나가 완전히 저걸로 채워져야 되기 때문에 솔직히 엄두는 안났거든요. 근데 이제 딸이 그나마 수업에서 자기가 뭐 들은 게 있다고 이건 그렇게 처리하면 안 된다고 그래서 열심히 찾더라고요.
김충현
사실은 지금 중앙에는 서울대학교 규장각이나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아니면 국립중앙박물관·도서관 이런 데서 유물들이 많이 가지고 있는데 사실 그렇게 큰 기관에 들어가면 작은 집들의 그 자료들이 빛을 보기가 좀 어려워요. 거기는 워낙에 좋은 자료들도 많고 기존에 가지고 있던 자료들이 많기 때문에 연구자들이 접근하기도 사실은 쉽지 않고요. 본인들이 가지고 있는 목록에도 약간 한계가 있는 경우도 있고 그래서 저희한테 맡겨 주셨으니까 저희가 또 이렇게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이제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문중이면 자기네들 박물관을 설립을 한다든지 아니면 수장고를 만들어서 그쪽에다가 보관을 하는데 사실 모든 집들이 다 그렇게 할 수는 없거든요.
그래서 저희 같은 경우는 문체부에서 국비를 지원받아서 자료를 수집하고, 보존하고 그걸로 연구 성과를 내는 일련의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저희에게 맡겨주신 유물들이 제대로 활용될 수 있는 방안을 스스로도 좀 찾아볼 수 있기를 저희도 희망합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생각하시기에 선생님께서 기탁해 주시는 그 유물들이, 자료들이 어떻게 활용이 되었으면 좋으실지 뭐 생각해 보신 게 있으실까요?
허윤정
저는 솔직히 정리를 해서 보내주셔서 이렇게 봤는데 참 뭐라고 해야 되나 이게 그렇게 뭘 여구할 가치가 있을까 라는 생각을 좀 했거든요. 뭐 이렇게 거래 같은게 있었고, 뭐 이제 이게 굳이 이렇게 필요가한가 이런 생각을 해서 솔직히 좀 부끄러웠어요. 이걸 갖고 와도 되나 그래서 좀 고민을 많이 했거든요. 그냥 저희가 해오던 대로 해야 되는지 근데 그때 책자를 하나 주셨는데 다른 집 내용도 볼 수 있더라고요. 다른집들은 딱 봤을 때 되게 멋지다 라는 것들이 있는데 저희 집은 딱히 그렇게 뭐가... (멋지지 않아서) 이게 괜찮은가? 여기에 보내도 되는건가?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에 저희는 그냥 잘 보관을 해 주시면.. 이건 며느리들이 계속 해왔던 거니까 그래서 그냥 잘 보관해 주시면 저희는 그걸로 정말 감사하죠.
김충현
그러니까 사실 그 문서라고 하는 게 문서 한 장 가지고는 의미를 찾아내기가 쉽지는 않아요. 근데 이게 문서들이 겹겹이 쌓이다 보면 그 문서와 문서 사이에서 서로 연관관계가 생기고 그 연관관계를 계속 링크를 걸듯이 꼬리에 꼬리를 물다 보면 또 하나의 스토리가 만들어지는 경우가 있거든요. 그래서 저희가 지금 당장 어떤 훌륭한 뭔가를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라는 약속을 드릴 수는 없지만 저희도 강원도에 관련되어 있는 자료들이 쌓이다 보면은 분명히 어느 부분에서는 톱니바퀴가 맞물리듯이 그런 커다란 의미가 만들어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는 경우가 있을 수도 있고요. 그래서 기탁해 주신 유물을 저희가 잘 보관을 하다가 그 유물을 잘 활용하실 수 있는 연구자께서 그 유물을 찾으신다면, 기록을 찾으신다면 저희가 잘 제공할 수 있도록, 그렇게 노력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혹시 저희 기관과 유물에 관해 하시고 싶으신 말씀 같은 게 있으실까요?
허윤정
저는 솔직히 처음 알았거든요. 지금 오죽헌에는 와봤어도 건물(율곡국학진흥원)이 한국적으로 예쁘게 지어 있잖아요. 그래서 보기는 봤어도 이런 일을 하는지는 몰랐어요. 그리고 이런일을 하는 곳이 있다는 것도 이번에 처음 알았거든요. 저희 입장에서는 너무 좋은거죠. 그리고 안심이 되고 업어지지 않아도 되는 거니까 만약에 저거를 아무도 안 받는다고 그랬으면 버리는 경우도 생길 거라는 생각은 들었거든요. 누군가는 버리지 않을까.. 저는 했지만 제 딸은 안 버리겠지만, 그 밑에서는 버릴 수도 있겠고...
김충현
누군가는 부담이 될 수가 있고요.
허윤정
그래서 이렇게 해 주신다고 하는 것 자체가 너무 안전하고, 안심이되고, 저는 되게 감사하죠.
김충현
네. 말씀 감사합니다. 저희가 원래는 율곡연구원이라고 하는 이름을 사용해 오다가 지난 (2025년) 9월2일 자로 율곡국학진흥원으로 이름이 변경이 되고 확대 개편됐습니다. 그래서 저희 기관이 앞으로도 문체부 지원을 받아서 강원권의 국학 자료를 수집하고, 보존하고, 연구하는 역할을 담당을 하니까 맡겨주신 유물에 대해서 책임감을 가지고 저희도 보존을하고, 보관을 하고 또 연구자들에게 내용을 전달할 수 있도록 그렇게 하겠습니다.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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