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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유의 곤
- 임영유의 목록 臨瀛儒義 目錄
- 정임록 丁壬録
- 영문의 관문 營門關文
- 이 대간이 김형진에게 보내는 글 李䑓與金衡鎭書
- 김형진이 이 대간에게 답하는 글 金衡鎭答李䑓書
- 이 대간이 김형진에게 보내는 글 李䑓與金衡鎭書
- 김형진이 이 대간에게 답하는 글의 별록 金衡鎭答李臺書別錄
- 경자년 庚子
- 사림이 순상에게 올리는 글 士林呈巡相書
- 소유 최찬억과 최규점 등이 서울에서 돌아옴 疏儒崔贊億崔逵漸等自京還來
- 본부의 보장 本府報狀
- 심가 등이 조목별로 올리는 글 沈哥等逐條上書
- 여러 유생들이 조목별로 올리는 글 諸生等逐條上書
- 김계발【형진의 아들】이 관에 올리는 단사 金啓渤【衡鎭子】呈官單辭
- 제사 題辭
- 본관의 보장에 대한 영문의 제사 本官報狀營門題辭
- 사림이 본관에 올리는 글 士林呈本官書
- 사림이 제사로 인해 다시 본관에 올리는 글 士林因題辭更呈本官書
- 김형진이 본관에 올리는 단사 金衡鎭呈本官單辭
- 본부의 보장 本府報狀
- 영문의 제사 營門題辭
- 하남 유생 심암 등이 만산 및 영문에 글을 올림 河南儒生沈黯等呈書于萬山及營門
- 본관의 하체 本官下帖
- 만산의 제사 萬山題辭
- 영문의 제사 營門題辭
- 사림이 또 순상에 올리는 글 士林又呈巡相文
- 신축년 辛丑
- 사림이 순상에 올리는 글 士林呈巡相文
- 김형진의 응지소 金衡鎭應旨疏
- 임인년 壬寅
- 김형진이 아들 계발을 보내 국자장에게 올리는 단사 金衡鎭送子啓渤呈國子長單
- 조정의 명령에 따라 향교와 서원이 있는 세 곳의 지방관에게 내린 체문 依朝令校院官三所官下帖
- 순영의 별도 관문 이후 지방관에게 내린 체문 巡營別關後官下帖
- 사림의 재회 士林齋會
- 본부의 보장 本府報狀
- 영문의 제사 營門題辭
- 정임록 丁壬録
- 정언 이택징의 계사 正言李澤徵啓辭
- 예조의 계하 관문에 의거한 순영의 관문 禮曹啓下關據巡營關文
- 유생 최진조 등 64인이 올리는 단사 儒生崔振祖等六十四人呈單
- 초토인 심상현의 원정 草土人沈尙顯原情
- 최진조의 봉초 崔振祖捧招
- 심상현의 봉초 沈尙顯捧招
- 최태정의 봉초 崔泰貞捧招
- 심상현의 두 번째 봉초 沈尙顯再次捧招
- 김계발이 보고한 사림의 정단 가운데 미진한 조건 金啓渤所告士林呈單中未盡條件
- 심찬무가 올리는 단사 沈贊武呈單
- 유생들의 보고 가운데 미진한 조건 儒生等所告未盡條件
- 심상현의 두 번째 원정 沈尙顯再次原情
- 하남 유생이 태학에 답하는 통문 河南儒生答太學通文
- 하남영당 사적 河南影堂事蹟
- 강릉과 간성 두 사관의 보장 江陵杆城兩查官報狀
- 영문에서 춘천과 양양 두 사관을 추가로 정해 다시 조사하도록 함 營門加定春川襄陽兩查官使之更査
- 김형진이 춘조 낭관에게 답하는 편지 金衡鎭答春曹郎官書
- 영문의 관문 營門關文
- 사림에서 향교와 서원에 통문을 보내려다가 이내 중지한 통문 초안 士林將欲通文校院仍爲中止通草
- 네 명의 사관이 하남을 조사함 四査官行查河南
- 김계발이 네 명의 사관에게 올리는 변무 단사 金啓渤呈四查官卞誣單辭
- 사림 조명홍 등 10여 인이 네 명의 사관에게 올리는 단사 士林曺命弘等十餘人呈四查官單辭
- 어사가 본부에 들어오자, 유생 최찬억 등 40여 인이 다 모여 올리는 단사 御史入府儒生崔贊億等四十餘人俱會呈單
- 사림 최찬억 등 40여 인이 어사에게 올리는 단사 士林崔贊億等四十餘人呈繡衣單辭
- 현산 상사 최창적이 보여 준 소록 峴山崔上舍昌迪所示小錄
- 네 명의 사관이 조사 보고한 뒤 순영의 관문四查官査報後巡營關文
- 화사를 올려보낼 때의 관문 畫師起送時關文
- 김형진이 아들 계발을 시켜 강릉, 양양, 간성 세 곳의 사관에게 올리는 단사 金衡鎭使子啓渤呈江陵襄陽杆城三查官單辭
- 강릉, 양양, 간성 세 사관의 보장 발사 江陵襄陽杆城三查官報狀跋辭
- 영문의 제사 營門題辭
- 하남영당 및 칠봉사우의 일로 예조 회계에 의거한 순영의 관문 도착일에 본부에서 내린 체문 河南影堂及七峯祠宇事禮曹回啓據巡營關文到付日本府下帖
- 심상현의 정배 관문 沈尙顯定配關文
- 회계 관문 후 사림이 본부에 올리는 글 回啓關文後士林呈本府書
- 훼철 후 보장 毁撤後報狀
- 주 부자 영정 이안 朱夫子影幀移安
- 주 부자 영정 승배 朱夫子影幀陞配
- 민백조가 김형진에게 보내는 글 閔百祚與金衡鎭書
《임영유의(臨瀛儒義)》는 정유년(1777, 정조 1) 6월 초부터 임인년(1782, 정조 6) 6월 12일까지 강릉 지역에서 심씨 일문과 강릉사족들간에 있었던 분쟁과 그 결과를 시간순으로 정리한 고서 형태의 필사본 기록물이다. 일명 ‘하남재 시비(河南齋是非)’로 불리는 이 분쟁은 노론(老論)의 당색(黨色)을 띤 두 세력 간에 벌어진 것으로, 양란(兩亂) 이후 18세기 지방사회의 재편 과정에서 일어난 향전(鄕戰)의 면면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